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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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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가지 기억-기억


BY 개망초꽃 2003-08-11

내 기억의 갈피 사이엔 이지러지고 빛이 바랜 꽃잎이 끼워져 있습니다.
내 기억의 갈피 사이엔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슬쩍 힘이라도 주어지면
바스라지는 가랑잎이 끼워져 있습니다.
기억의 갈피속엔 눈으로 볼 수 없는 먼지가 쌓이고 오만가지 잡스런 세균이 묻어 있습니다.
오래된 기억안엔 때국이 눌러붙어 군데군데 누리틱틱하고
실수로 찢겨지고 욕심으로 구겨져 있습니다.

사람사는 일이 편해지려면 좋지 못한 기억력이라 했는데
학창시절엔 그다지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는데
이 년의 기억력은 그때 그 장소에서 있었던 환경,
그때 입었던 옷, 그때 피었던 꽃, 그때 그 사람의 표정,
그때 툭 던진 한마디 말도 정확하게 기억이 납니다.

특히 믿었던 사람이 내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사랑했던 사람이 날 섭섭하게 대할 때라든가
그래서 나를 사겼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좋게 말하면 감수성이 예민하다거나
비꼬듯이 소설 몇권을 쓰겠다거나
제일 치명적일 말은 피곤해서 너랑은 말도 하기 싫다는 표현입니다.

사람에겐 누구나 예민한 면과 둔한면이 공존하고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있게 마련이고
게으른 면과 부지런한 면이 양면하고
꼴도보기 싫은 사람과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는건데
내 성격이 좀 솔직하고 겉으로 싫다 좋다가 표시나서 그런건데
그걸 가지고 예민부터 시작해 피곤하다고 끝을 내버리니 내 참 서럽고 억울해서......헹~~~

제가 변명을 하자면,예민하지 않은면이 얼마나 많은지 나열을 할까요?
슈퍼가서 거스름 돈도 세지 않고 가격도 따지지 않고 물건도 대충 골라 잡습니다.
가리는 음식은 딱 하나 있습니다. 개고기.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그냥 놔두는 편입니다.
학원도 안보내고 설마 산입에 거미줄 치겠나 한답니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편하게 살자 이런말도 자주 합니다.
그래서 친한 친구나 가까운 친지분들은 나보고 언제 절에 가서 도 닦고 왔냐 한답니다.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좋지도 않은 성격에 대한 변명으로 빠졌습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는......
기억은 좋은 기억보다 나빴던 기억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남아
나를 예민하고 청승맞은 여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흘러간 노래나 계절 따라 피는 들꽃을 보면
그때 있었던 일들이 하나씩 두 개씩 나타나다가
어느때는 감당하기 힘겹게 무더기로 떠올라 내 가슴을 터지게 합니다.

학창시절 교정에서 흘러나오던 대학가요제가 라디오에서 나오면
엄마한테 들킬까봐 이불 뒤집어 쓰고
16화음도 되지 않았던 라디오 방송의 추파수를 땀나게 맞췄던 늦은 밤,
그렇게 공부를 정성껏 했다면 일 이등은 맡아놓고 했을 거란 누구나 하는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전영록의 애심과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는
처녀시절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초능력자가 됩니다.

부정한 여자에게 달아주는 주홍글씨처럼 선명한 하늘나리꽃이나
함초롬한 보라색 외로운 도라지 꽃을 보면 슬프지만 아늑한 고향이 기억납니다.

허옇게 온 들판을 점령한 개망초꽃이나
지독하게 퍼런 달개비꽃을 보면 눈물만 주고 떠난 사랑이란 놈이 기억납니다.

민들레가 노랗고 쑥부쟁이 꽃이 연보라색으로 하늘거릴땐 꿈을 꿉니다.
선명하게 행복했던 기억은 없었지만
신비롭고 어찔했던 아름다운 기억은 더러더러 있었습니다.
그런 꿈을 꿉니다.
행복해질 그런 꿈......
그런 기억의 들길을 따라 걸어가고 싶습니다.

지울 수 없는 볼펜자국도 내 것이였습니다.
굵은 주름처럼 없어지지 않는 상처도 내 것이였습니다.
찢겨져서 순서가 안맞아도 그것 또한 내가 감안해야 할 내 것이였습니다.

수 없이 되집어 가며 보고 또 보았던 나만의 기억의 갈피......
열세가지를 읽어 드리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