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대는 여자들 세상이었다..
지금은 간호대에 남학생들도 곧잘 눈에 띄곤 하지만 그땐 여자들이 전부였다..
신입생 환영회엔 그래서 인기있는 파트너과로 늘 지목받고 있었지만
의외로 우리 간호대 학생들은 그런것에 지겨워 했다.
여학생에 굶주린 남학생들의 주목 대상이 된듯한 상쾌하지 못한 뒷모습에
지쳐서 그랬었던것 같기도 하고..
그날도 공과대에서 그것도 신입생인 우리한테 졸업생 남학생들이 파트너로
초대장을 발부했었다.. 장난끼 가득한 과대 남학생한테 우린 지겹다는 얼굴로
과대의 초대장 연설을 읽지도 않고 밀린 리포터 써대기에 바빴다.
그리고..
신입생 환영회가 시작됐다.. 늘.. 뻔하게 알고있는 지루한 순서에 의해 시끄러운
음악과 먹거리들이 늘어져 있었고 여자들 세상에서 살아오다 남자들 세상에
던져진 우리여학생들은 어쩐지 그날은 호기심이 발동했었다.
왜냐면 졸업생들이라서 그랬는지 유별난 친절한 남학생들의 예의바른
성실함에 막 반하느라 다들 눈을 반짝대고 있었으니깐..
그때.. 난.
갑자기 납짝한 호떡이 생각났다..
왜냐면 내 앞에서 내 손을 잡아 이끄는 건장한 남학생 얼굴을 올려다 본 순간
호떡처럼 얇은 얼굴과 얄팍하게 눌러진 코를 본 순간 어쩜 그렇게 똑같을까
하는 상상으로 웃음이 막 터져 나왔다.. 근데 그게 잘못 이었을까?
이 남학생은 날 잡아 끌더니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날 빤히 쳐다보더니
'' 너 이름 뭐니? 너 왜 날 보고 웃니? 너.. 아까부터 내가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래서 웃은거지? ''
'' 저기.. .. 저기요... ''
난 그 남학생을 어두운 곳에 있다가 밝은곳에서 다시 보니깐 어쩐지 험상궂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 그땐 무섭고 내가 실수하고 있다는 생각에 눈을
똑바로 뜰수가 없었다.. 그러다.. 과 친구들 몇 몇명이 날 찾으러 쫓아나오고 있었고
그래서 난 거기서 해방될수가 있었다..
일주일이 지난 그날은 모처럼 강의가 오전뿐이었고 다른 학생들처럼 나도 가뿐하고
상쾌한 기분에 강의실에서 막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내 앞에
그 남학생이 버티고 있는지도 몰랐었다..
'' 잘 있었니? 너 강의 다 끝났지? 나가자.. ''
'' ... .... ''
친구들은 호기심반 걱정반으로 날 주시하고 있었고 남학생은 의외로
친절한 말투로
'' 걱정마.. 나 무서운 사람아냐.. 너 기다릴려고 나 아까 아침부터 기다렸어.
그러니깐 나가자.. ''
무섭던 얼굴이 장난스럽게 변하더니 내 책을 대신 서둘러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따라 나섰고 토요일이라서 그랬는지 남학생에 대한 내 좋지못한
상상도 거기서 끝나고 있었다..
'' 너 말야.. 뭐 먹고 사니? 너 그 몸으로 어떻게 병원실습도 하고 공부를 하냐?
너 .. 실습이 얼마나 힘든줄 알어? ''
난 아직 이 남학생이 어려웠고 낯선 남자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 남아있어서
할말이 없었다..
그날 이후.. 남학생과 난 뚜렷한 약속은 없었어도 강의후 돌아서면 내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고 늘 배고파 했었다..
그리고.. 오랜시간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만나서 듣게 되는 얘기는 날 부담스럽게
했었다..
오늘은 얘길 해야지 .. 다신 날 기다리지 말라고.. 이러지 말라고..
그런데 그 남학생은 늘 날 맴돌더니 결국 우리집에 찾아왔었다..
자기집에서 과일장사를 한다며 과일을 한바구니 담아서 엄마한테 안기더니
나랑 더 만나고 싶다고 했었다..
졸업반이라서 이것저것 맘 고생이 많았었고 거기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끔찍했었다. 늘 따라붙는 이 남학생의 정체에 난 기막혀 죽을것 같았다.
그리고 ..
내가 거기서 빠져 나오기까진 두사람에게 시간이 필요했고 난 남학생에
대한 모진 인내로 버틸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
가끔씩 ...
그 남학생이 아직도 살아있어서 잘 살고 있는지 ..
배고파 하진 않는지..
그런생각이 들었다..
살아온 환경이 불우했던 남학생에 대한 연민이 날 힘들게 했었지만
그건 그 남학생이 치뤄내야 할 숙제란걸 알았더라면 좀 더 좋은기억으로
떠날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마도..
다신 배고파서 힘들어하진 않겠지..
학교 축제때 해병대 군복을 입고 뭐 먹고 싶냐며 날 이끌던 그 남학생은
내가 힘겹게 낑낑대며 밀어내느라 고역이었던 해병대에 갔다온 남자였다..
해병대 남학생이 나한테 주고간건 사랑하며 살기에도 하루하루가 벅차다는
쓸쓸한 말이었다..
요즘 그 말이 자꾸 날 허전하게 하지만 쓸쓸해하지 않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노력중이다..
그리고..
해병대 갔다온 남자답게 넓은 바다처럼 건강하게 살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넓은 바다가 그리운 여름에.
건강한 바다가 보고싶은 여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