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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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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깢 돈이 뭐길래...


BY 이쁜꽃향 2003-08-08

친구들과 모처럼만에 맥주 한 잔 하기로 했다.

술도 잘 못하는 여인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술이 한 모금씩 들어가니

순식간에 중년아줌마에서 여고시절 수다쟁이 소녀들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친구들 가운데 성격이 가장 온순하고 얌전한 숙이는 유일한 전업주부이다.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남편에게 꼼짝도 못하고 사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의 표본.

그런 그녀가 술이 한 잔 들어가면 자신의 속내를 곧잘 드러내곤 한다.

숨기거나 위장하거나 가식적인 걸 모르는 친구.

 

그 친구는 삼년 전부터 여동생의 음식점에서 써빙 아르바이트를 해 왔다.

처음 몇 년간은 적자에 시달리던 가게가

이젠 이 지역에선 음식 맛 좋기로 소문이 나서

저녁 시간에 조금만 늦으면 밖에서 대기해야만 한다.

미대에서 상업미술을 전공한 그 동생은 ***시장의 디자이너였는데

수년 전의 화재로 전재산을 날리고 빚더미에 앉게 되어

무능력한 남편과 이혼하고 고향으로 내려 온 미모의 여성이다.

처음 보따리 장수부터 시작하여 양품점, 까페,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며

실패를 거듭한 우여곡절이 많은 그녀에게 우린 늘 단골이어야 했다.

그런 식으로라도 도와주자는 의도로.

 

몇 년의 시련 끝에

다행히도 삼십여년간 한정식 식당을 해오신 어머니의 손맛으로

점점 입소문이 나서 다른 식당은 파리 날리고 있을 적에도

동생네는 앉을 자리가 없어 밖에서 웅성거려야 하는 음식점의 어엿한 여사장이 되었다.

날이 갈수록 일손이 부족해지자 그 여사장은 큰언니인 내 친구에게 써빙일을 부탁했다.

무엇보다도

아무 예고도 없이 안 나와버리는 종업원들 때문에 애를 먹는 터에

언니는 얼마나 듬직한 일꾼이겠는가.

마침 애들도 모두 대학생이 되어 할 일도 없고

돈도 벌 수 있는 기회다 싶어 숙이는 선뜻 동생일을 돕게 되었다.

 

친구들끼리 모이려면 당연히 그 음식점을 이용해야만 했다.

바쁜 시간이라 숙이가 빠져 나오기가 어렵다며 자꾸만 동생의 눈치를 살피고

거기서 모일지라도 써빙을 돕느라고 분주한지라

친구는 차분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마음대로 얼굴조차 볼 수 없게 되니 우린 숙이에게 불평을 했다.

"얘, 그 날만 다른 사람 쓰면 안되니?

언니인데 그만한 사정도 못 봐준대니?

네가 빠지면 안되는 거야?"

동생이 노골적으로 싫어한단다.

그리고 아무리 친자매간이지만 냉정하게 사장과 종업원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아무리 개구리 올챙이적 모른다지만

저 어려울 적에 몇 년 동안 친구네가 얼마나 도와줬는데...

하지만 친구가 불편해 하는 거 같아

별 수 없이 그녀를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게 하는 쪽으로 모임을 정해야만 했다.

때로 숙이는 대학생인 딸년을 대타로 세워두고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일주일 전에 그녀가 가게를 그만 뒀다고 한다.

"갑자기 왜?"

모두들 의아해했다.

전혀 몰랐던 일이었으니 말이다.

 

친구는 술기운을 빌어 그간의 사정을 차근차근 얘기했다.

가게가 몇 년간 잘 되다 보니 빚도 모두 갚고 돈을 벌게 된 여동생이

점점 갈수록 그야말로 목에 힘을 잔뜩 준 '사장'으로서 '종업원'으로 대하더니

근래엔 노골적으로 친구에게 악 쓰고 대든 일이 있었다고 한다.

직급이 높은 공무원의 아내인 친구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종업원들이 펑크라도 내 버리면

부랴부랴 아쉬운 소릴 해가며 불시에 친구를 불러내더니만

이젠 자기는 사장입네 하는 식으로 상하 분별을 못할 정도이니

밥벌이 때문에 일하러 나왔더라면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싶더란다.

굳이 일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을진대

서로 돕자고 써빙일을 해 준 그녀를 '언니'가 아닌 종업원으로 대하더란다.

그래서 너무 화가 나 그만 뒀다며 정말 기가 막히고 속상하다고 한다.

 

"내가 정말 못 살기라도 했으면 얼마나 무시했겠니?"

"설마...친자매간에 그럴 리가 있겠니..."

"아니야,

막내에겐 아주 멋대로 퍼붓는 모양이더라.

밤 늦은 시간까지 도와주는 동생한테...

뭐 사장 혼자 힘으로만 돈을 벌 수 있니?

모두가 피땀 흘려 종업원들이 고생한 덕이지...

그걸 알아야지..."

속 상해하는 친구를 위로하면서도 내심 화가 치밀었다.

우리가 그 가게를 단골로 가는 이유는 오직 친구 얼굴 봐서 가는 건데

아무리 돈 좀 벌었기로서니 감히 친언니를 무시하다니...

 

독한 것 같으니...

어쩌면 형제자매보다도 돈이 더 소중하게 여겨졌을까...

돈 독 올랐다고 흉 보던 다른 친구의 얘기가 헛 말이 아니었나 보다.

하기야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들어가도 옛날처럼 반갑게 인사하는 게 뵈질 않더라니...

가난뱅이가 갑자기 부자가 되면 인간성이 나빠진다더니...

졸부근성이라던가...

갑자기 돈을 많이 번다는 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닌가 보다.

 

문득 내 동생이라면 어땠을까...

나라면 어땠을까 ...

곰곰 생각을 해 보지만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 뿐이다.

그깢 돈이 도대체 뭐길래

소중한 피붙이에게까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단 말인가...

그래서 형제간에도 서로가 잘 살아야된다는 건가?

나 같으면

내가 가진 걸 형제들에게 모두 퍼주고 싶을 거 같은데...

형제들이 고생하는 거 가슴 아파 못 볼 거 같은데...

그래서 난 큰 부자가 못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