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맞게 비가 내린다.
변덕스러운 여편네처럼 비는 오락가락 했다.
이런날일수록 옷을 화사하게 입어야 된다는 나의 고집으로
촌스런 핑크빛 치마를 입고
형광분홍색 우산을 썼다.
앞이 안보일 정도로 비가 내렸다.
멀쩡하던 아스팔트가 냇물이 되어 떠내려 갔다.
그러다가는 하늘에 조명을 단 것처럼 햇살이 땅위를 지그제그로 비췄다.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다.
구겨진 치마를 다렸고
자꾸 뒤로 뻗치는 머리를 드라이 했고
치마에 맞춰 분홍 립스틱을 칠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오늘은 빗님도 성질 급하게 지랄하니까.
오늘은 실로 몇년만에 영화 한편 꽁짜로 보러 도시로 나가야하니까.
요즘 무궁화꽃이 전성기다.
얼굴 큰 무궁화는 오늘 입은 내 치마색처럼 촌시런 분홍색이다.
그러하지 않으면 푸리딩딩한 보라색이다.
처음 복숭아 들어오는 날이다.
한 개를 조각내서 네명이서 맛을 보고(무농약 복숭아라서 비싸거든)
대여섯개씩 봉지치기를 했다.
그리고 썼다,뭐라고?
"제 얼굴을 만지지 마세요" 이케......
커피를 내 것까지 매장 도와주시는 아줌마가 타 놨는데
바빠서 따끈한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다 식은 걸 몇모금 마시고 씽크대에 버렸다.
오후에 나가려면 매장 정리를 해야하니까 바빴다.
비가 몇차례 번덕을 부리며 내렸고,
손님이 이어서 계속 왔고,
포항으로 포도를 보내면서"터지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하고 택배 아저씨께 부탁을 했고,
지하철 타고 멀리 가다가 화장실 가고 싶으면 난감하니까 화장실 갔다오고,
분홍 립스틱을 다시 한번 덧칠하고
우산을 잊지 않고 들고서는 매장을 나섰다.
오늘은 영화 보러가는 날이다.
그것도 꽁짜란다.
세상에 꽁짜는 없다더니.....
꽁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는 말도 있는데.....
대머리가 되든 내가 나중에 뭘 바치게 되든 이유있는 외출은 신났다.
목적 있는 짜투리 시간은 내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일찍 서울극장에 도착했다.
화려한 도시,화려한 영화 게시판.화려한 여자들......
터미네이터 원,투,쓰리.
다 봤다.
원은 처녀때 의정부 영화관에서 보고
투는 결혼해서 비디오로 보고
쓰리는 꽁짜로 친구랑 봤다.
기계(로보트)여자가 멋있다.
무표정 무감정 무대뽀(이 글자 맞나?)
밖엔 어둠속에 핀 도시가 더 화려했다.
비가 몇방울 떨어져서 우산을 폈다가 접었다.
"똥개 훈련시키나."
아......똥개라는 영화도 있었다.
바람이 촌시런 내 치마자락을 휘~~이~~날렸다.
"바람아 날 유혹하지 말그라."
아......바람난 가족이란 영화도 있었다.
오늘은 비가 변덕스러웠고
나는 꽁짜로 영화 한 편 화끈하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