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2
여전히 시댁은 어렵기만 하여 마음에 그늘이 짙어가고 있을 때, 당시 입시준비를 하던 둘째아이의 참고서에서 무명의 옛 여인이 썼던 시집살이에 대한 위의 시를 우연히 발견하였었다.
여인들의 삶의 고단함을 해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이 시는 내게 적지않은 위로가 되었고, 그 진솔함에 웃는 여유로움도 지닐 수 있게 해주었다.
둥글둥글 수박식기 밥담기도 어렵더라
도리도리 도리소반 수저놓기 더 어렵더라
오리물을 길어다가 십리방아 찧어다가
아홉솥에 불을때고 열두방에 자리걷고
외나무다리 어렵대야 시아버니같이 어려우랴
나뭇잎이 푸르대야 시어머니같이 더 푸르랴
시아버니 호랑새요 시어머니 꾸중새요
동서하나 할림새요 시누하나 뾰족새요
시아지비 뾰중새요 남편하나 미련새요
자식하난 우는새요 나하나만 썩는샐세
뒤돌아서 욕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으면서 아름답게 시로 풀어놓았던 옛 여인의 지혜를 되새겨보며 나는 그 여인을 많이도 닮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내 마음은 선량한 변화를 거부하는지 가만히가라앉아 자태만 안보일 뿐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섭섭함과 조바심의 그림자는 여전히 시댁식구들을 만나야 한다거나, 시댁에 가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다.
딸이자 시누이, 친정부모이자 시부모, 양 쪽의 역할을 감당하는 대부분의 여인들이건만, 좀 더 행복한 생활을 잘 유지해보라고 설정된 주인공들이건만, 나의 현실 속에서는 오직 이상에 불과한 꿈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참담한 기분일 때가 많았다.
이젠 항복이라는 백기가 아닌 평화의 깃발을 나부껴야만 한다.
내게 있는 모든 무기를 버리고 오직 사랑의 깃발 하나만 들고 나아가야만 한다.
그래야만 아픔, 미움, 슬픔, 서러움 등의 과거의 그림자에서 해방될 수 있으리라
귀먹어서 삼년이요 눈어두워 삼년이요
말못하여 삼년이요 석삼년을 살고나니
배꽃같던 요내얼굴 호박꽃이 다되었네
삼단같던 요내머리 비사리춤이 다되었네
백옥같던 요내손길 오리발이 다되었네
열세무명 반물치마 눈물씻기 다젖었네
두폭붙이 행주치마 콧물받기 다젖었네
울었던가 말았던가 베게머리 소(沼)이겼네
그것도 소(沼)이라고 거위한쌍 오리한쌍
쌍쌍이 떼 들어오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