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언니가 왓다.
그렇게 야밤 도주하듯 떠났던 언니가 8년 만에 드디어 돌아왔다.
그것도 한달 동안의 말미를 얻어....
언니를 인천 공항으로 픽업을 하자던 동생이 새벽 5시에
우리를 데리러 오겠단다.
친정엄마와 언니의 딸이 그리고 결혼 안한 여동생이
오랫만에 우리집에 모여 있었다.
친손자를 맏아 키우는 엄마는 모처럼만의 외출 이었고
지방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여동생은 40대 이지만 미혼이고 워낙 폐쇄적이다 보니 우리집을 처음 방문 했다.
그래서 오랫만에 이런저런 이유로 요번의 만남은 제법 의미 있는
모임인 것이다.
흥분 탓인지 잠이 늦게 들어서 인지 일찍 일어나기가 힘들어
몸을 꾸물 대고 있는대 팔순의 엄마는 벌써 일어나 이불을 접어
넣고 어제 부터 공항을 따라 나서겠다고 옷을 입고 계셧다.
혈압과 당뇨와 관절염인 엄마에게 이곳의 새벽공기가 무리라고
겨우 만류하고 우리끼리 나섰다.
우리집은 그렇다.
팔순의 친정엄마가 집안일을 하신다.
물론 아버지의 적극적인 협조 아래 ----
쓰레기 분리수거, 청소, 세금 납부, 조카들 학교 준비물은
당연히 아버지 몫이지만
음식물 만들기 기타 등등, 제사, 명절, 시제등 모든 일이 그분들
몫이다.
어째 그러냐 하면 이것은 독특한 우리 친정집만의 문화이다.
두분은 19세 때 결혼 하여 일가를 이룬 후,
늘 담당 하던 가장 으로서 직무나 가사 일을 지금도 담당 하고 계신다.
이야기가 왜 이런 방향으로 흘러 버렸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쓰기가 힘들다.
애써 외면 했던 현실을 바라보는 일이,
잠시,
쉬었다가 호흡을 고르고
IMF때 남동생은 사업을 부도를 내고
실질적인 가장은 올캐와 여동생이고
그 동안 많은 아픔을 견디던 가족들이 이제 만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8년전 직할시에서 대형 약국을 하던 언니가 부도를 내고
떠났던 언니가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