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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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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짐


BY furndle 2003-07-31

남편과 이혼하겠다고 집안에 선언을 했다. 남편은 침대에 큰 키를 쪼그리고 누워 잠들어있다. 누워있는 마른 몸피를 본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고 말았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기시작하면 다시 안스럽다는 생각대신 남편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이 남자에게서 벗어나야  내가 아이들이 살 수 있다. 이 남자는  나의 아이들의 내일을 뺏어간 남자이고 그리고 또 뺏어가고 말 사람이다. 십년을 넘어 살면서 두아이 낳았다. 그래서 미운정고운정 왜 아니 들었겠는가. 이렇게 움츠리고 누운 모습을 보면 끝없이 연민이 솟구친다. 그런데 내가 저 남자를 어떻게 버리나. 하루에도 수십번 그 생각으로 몸을 떨었다. 그리고 이렇게 훌쩍 세월이 지나갔고 아이는 엄마보다도 더 큰 키로 자라났지만 남편은 여전하다. 그러면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한다. 무엇을 기다리라는 말인가. 언제까지 결국 모든 것이 끝장나 아이도 나도 기진하여 함께 추락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남편은 이제 겨우 마흔 둘이다. 마흔 둘의 나이에 세상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스스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지만 난 백기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마흔의 나이는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다. 그러나 포기하기에는 살아야 할 날과  두어깨에 짊어진 짐이 너무많다. 한 사람의 포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갓 날개가 솟아오르는 어린 백조의 날개를 뺏는 일이기도 하다. 남편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중한 내 아이들의 얼굴에  기쁨대신 평화대신 고통과 불안과 삶에 대한 불신을 준 죄다. 다른 것은 모두 용서할 수 있어도 그것만은 용서할 수 없다고 도리질을 한다. 그래서 난 남편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

 아직 우리 사회에 이혼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지 알면서도 아들은 아빠가 없으면 친구들이 무시하니까 미운 아빠지만 아빠랑 함께 살아야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아들을 위해서라도 이혼을 결단해야만 한다. 내게 있어서 이건 생에 처음으로 내리는 무서운 결단이고  감당해야 할 순수한 내 몫이고 아무도 이 일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아이들의 장래에 얼마나 큰 파급이 미칠려는지 너무나 잘 알면서도 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혼을 감행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짐시킨다.

 남편은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남한테 악한 소리를 못한다. 그러나 마누라한테는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는 보이지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양하게 연출하는 그런 사람이다. 식구들한테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 식구들의 생각은 아랑곳않고 자신의 생각에만 차있는 사람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왔지만 그러나 아직도 그를 난 이해할 수 없다.

 만남은 어차피 헤어짐을 동반하여 오는 것이리라. 누구의 잘잘못을 가려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모든 것은 누추한 변명이 될것이다. 수긍하며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겠지. 그것만이 우리가 무책임하게 내 던진 만남에 대한 마지막 예의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