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36

저도 아줌마가 될 수 있을까요?


BY 박기희 2001-01-17

아줌마가 되고픈 여자=박기희

벌써 2001년이 되어버렸다.
내가 사회에서 소외되어버린 사이에 2001년이 써 있는 달력이 벽에 매달려 있네...
1999년부터 혼자서는 집 앞 수퍼에도 갈 수 없을 만큼 많이 약해졌다.
사람들이 날 보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고개도 못 들고 ...
1999년 2월 18일 설날을 앞두고 새로운 직장에서 면접을 보고 오는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이 바뀐건가보다.
원주네 집이 그 회사에서 가까웠으니까 때마침 점심즈음에 원주가 들르라는 전화에 잠시 들렀던 것 부터 잘못이었나보다.
원주가 서울서 비올라 레슨을 하러갈때 딱히 약속이 없던터라 함께 원주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서울까지 갔고,서울서 친구들과 까페에서 잠시 만난후 다시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토끼띠인 내가 토끼띠해를 맞았으니 좋은일만 있겠구나 새로운 직장을 옮겨서 신나게 일해야지.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에 갑자기 정신을 잃었고 너무 아팠다.
차에 달린 거울을 보고는 다시 기절을 했던것 같다.
그 때 내 얼굴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내가 타고 있던 차가 중앙분리대를 받아서 차가 전복되었었나보다.
온톤 피범벅이 되고 너무 무서운 형상이 나라는데 믿기지 않았다.
원주는 어깨가 아프다고 호소했고 난 남자들 목소리만 들렸는데 깨어보니 병원에서 내 입술과 귀를 응급처치 하고 있었다.
너무 아프고 괴롭고,말을 했지만 입이 찢어져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가족들은 오지 않았다.
병원에서 전화를 했지만 언니도,엄마도 장난전화인줄 알았나보다.
내가 집에 들어간다고 전화를 한지 얼마 안 지난 후였으니 그럴 만도 하지.5분후면 집에 갈거라고 했으니까.
할 수 없이 오빠 연락처를 알려줬다.
내가 못 되게 굴어도 다 봐주는 착한 오빠.
단숨에 멀리 인천서 부천까지 달려온 오빠.
그 후론 다시 깨어보니 중환자실이었다.
꿈을 꾸듯이 몽롱하고 너무 어지럽고 미식거리고...
성형외과도 없는 병원에서 얼굴을 100바늘 꿰맸다.
이마,뺨,귀,입,눈을 3차례나 했다.
유리가 자꾸 나와서,유리를 자꾸 찾아내서,또 하고 또 하고...
며칠후 일반병실로 옮긴후에도 난 너무 무서웠다.
우리 가족들과 원주네 가족들이 싸움이라도 할 까봐.
무보험이었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고 계셨던 할아버지가 며칠후 세상을 떠나셨다.
가족들은 장례식 준비나 뭐다 해서 충주로 가고 나 혼자 병실에 있었을때 형사가 와서 이것저것 말을 시킨다.
친구가 옆에서 고개를 설레설레 전다.
난 "처벌할 생각 없습니다"고 말했고 지장을 찍었고...
가족들이 돌아와서 그 일을 안 후에 모두들 나를 원망했다.
후회할 짓을 했다고...
난 정말 그 친구와의 사이가 금 가는 걸 원치 않았을 뿐인데,가족들은 내 얼굴이 얼마나 심각한지 병원비,성형수술비,앞으로의 일들을 걱정하셨다.
치료비를 지급하겠다는 형식상의 합의서를 작성했지만,무지한 우리 가족들은 보증인에 원주 엄마만을 기재했다.
그 후 형부가 그 쪽 집의 다른 연대보증인을 요구했지만,내가 진술서에 처벌을 안 한 다고 한 이상 그 합의서는 무의미 했을 뿐이었다.
아무 효력없는...
더구나 원주 아빠는 법대대학원까지 나온 사람이었으니까 어차피 그 합의서는 재판을 하기전에는 무용지물인걸 알고 보증인에 엄마이름만 쓴거였으니까.
물론 다른 연대보증인이 있을 경우엔 조금 틀렸겠지만...
얼마 후 나만 병원에 남고 그 집 식구들은 보이질 않았다.
전화로 아무런 보상을 해 줄 수 없다는 확답만 줬을 뿐이다.
그 집선 의심하고 보증인을 요구한 것이 기분 나빠서 보상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엄마는 그 일로 너무 늙어버렸다.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줬던 원주가 직접 엄마한테 전화로 그런 확답을 줬으니까...
난 할 수 없이 병원비를 못 낸체 퇴원을 했고 병원에서의 독촉 전화에 시달렸다.
그 당시 살던 집까지 할아버지의 유산문제로 큰고모의 말도 안 되는 주장 탓에 내줘야 했던 상황이라 우리 가족들은 최악이었다.
방법이 없을까 어떻게 5000만원이나 된다는 성형수술비를 마련하지...
당장 병원비는 어떻게 해...
갖은 방법끝에 손해사정사를 알 게 되어 문의를 해서 책임보험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 게 되었다.
장해를 받으면 240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장해라면...
평생 얼굴에 흉터가 남는 다는 건데...
하지만 당장 성형수술을 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5달을 매달렸다.
보험회사측에서 수술을 하기전 장해는 의미가 없다고 해서 손해사정사가 아는 성형외과에서 빚을 져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도 여전히 장해 7급이란 판정으로 보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성형외과 부르는 게 값...
손해사정사에게 260만원주고,병원비 400만원,빚진 성형수술비 400만원.
순식간에 1000만원 돈이 날아가 버렸다.
그 후로 14개월동안 성형외과를 다녔다.
앞으로도 언제까지 수술을 해야 할 지는 모르겠다.
14개월동안 레이저치료를 받았고,그러면서 의사의 말이 수술 하지 않고 레이저만으로 치료 할 수 있대서 믿고 있었는데 의사의 태도는 날 안심시키지 못했다.
백병원에 가서 눈에 대해서 물어보고 수술날짜를 잡았다.
다른 병원 여기저기 가지 말고 차라리 마음의 안정을 찾으라시는 말씀 ...
아마 완치가 될 수 없나보다.
흉터란 없어지지는 않는법이니까.
이런 모든 일이 있을때에도 내 곁에서 함께 힘들어해주고 조금씩 나아가는 얼굴을 보며 호들갑을 떨어주는 사랑스런 남자친구가 있어요.
나와는 어울리지 않지요.
난 27살 먹은 최악의 여자니까요.
예전엔 풍족하진 못했지만 평범했었으나 지금은 가난 그 자체니까요.
앞으로도 얼굴을 수술해야 할 비용이 얼마나 들지도 모르고...
그 사람도 절 많이 사랑하나봐요.
오빠 부모님께 인사도 드렸고 가끔은 부모님댁에 갔다오기도 하거든요.형님도 누나도 형수님도 조카들도 제 얼굴을 보고 놀라진 않지만 많이 맘이 안 좋겠지요.하지만 내색 않으시죠.
오빤 항상 제 얼굴이 낫지 않아도 괜찮다지만 전 이쁘게 나은 모습으로 결혼식하고 아기도 낳고 그런 이쁜 아줌마가 되고 싶어요.
그런 아줌마가 저도 될 수 있을까요?
처음엔 부모님들의 반대가 무지막지 했지만 힘겹게 견뎠답니다.
지금은 찾아가면 잘 대해주시구요...
하지만 그게 결혼이랑 연결이 될지는 아직도 모르겠네요.
어르신들은 제 얼굴이 올해에는 좋아지겠지 하고 생각하실텐데요.
어쩌면 영원히 상처를 않고 살아야 할 지도 모른다느 걸 아신데도 결혼하라고 하실까요?
너무 많은걸 잃어버렸는데 오빠까지 잃고 싶진 않아요.
중학교때부터 쌓아온 12년동안의 오랜 우정도 한 순간에 잃었고,사람에 대한 신뢰감도 잃었지요.
그리고 당당하던 자신감도...
대신 하나님을 더 따르게 됐고,오빠와 힘든 일을 겪으면서 더 단단해진 사랑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전 희망이 있는 건가요?
그 사랑이 영원할 수 있다면...
전 2월 26일날 수술 합니다.
되돌아올 순 없지만 남을 쳐다볼 수 있을 만큼의 눈으로만 된다면 좋으련만 수술이 쉽지만은 않다는군요.
마음이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오빠를 보내야만 할 것 같기도 하고,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만이 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