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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39) *그와 나는 영원한 평행선(?)*


BY 쟈스민 2001-10-11

조용히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아침부터
나에게선 쨍그랑 거리는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어제 밤에 내린 가을비에
밤새 열어두었던 차창안으로
축축히 빗물이 들어와 있었고...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신문지들 사이로
잡다한 물건들이 나동그라져
그렇게 아침을 여는 나의 눈에
보고싶지 않은 풍경들이 연출되고 있었다.

남편의 필요에 의하여 어제 하루 내차를 빌려(?)주었더니
하루만에 차안이 거의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거다.

아마 내가 옆에 없으니 몰래 담배를 피웠을 것이며...
가장 편안한 자세로 사용한 흔적이 여기 저기에 남아 있었다.

노면의 습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이 아침에 ...
나는 한바탕 소리를 친다.
원상복귀하라고...

한번 사용한 물건을 늘 제자리에 놓는 것이
가장 편안한 동작이 되어버린 나와
그저 아무데나 놓아 두고 필요할 때만 찾아대는 남편은
결혼후 10년동안이나 그 일로
끝도 없이 나를 잔소리 많은 여자로 만들고 있었으나
아직까지도 고쳐질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다.

10년 세월이 아까워서 ...
그동안의 참고 산 시간들이 억울하여서...
하필이면 이 아침에 쌓인 것들이 폭발을 하고 만 것이다.

차안으로 들어온 빗물에 차가 좀 젖은 일은
어찌보면 별일이 아닐수도 있으나
그보다 매사에 꼼꼼히 챙기는 면이 아직도 보이질 않고 있음에
그에 대한 지적을 하면 어김없이 나를 잔소리 많은 마누라 정도로
인식해 버리는 그의 무신경함에 화가 나는 거다.

"어... 분명히 어제밤에 닫았는데..."
하며 그는 시치미를 떼어 본다.
그럼 밖에서 누가 일부러 창문을 내려 놓았다(?)는 이야기가 되나...

집중적인 공격으로 제 할말을 쏟아내고 있는 내게서 호락 호락
넘어갈 기세가 아님을 느꼈는지 ...
어느새 그는
미안합니다....
한마디로 일축하며 어서 그 순간에서 벗어나기만을 기다림이
역력했다.

10년동안이나 들어온 미안합니다.... 가 별다른 감흥을 내게
주지 못함을 알면서도 개구장이 같이 웃음석인 변명의 미안합니다...
는 여전했다.

그는 그 효력을 아직도 믿는 걸까?

불청객이 되어 찾아온 가을비 때문에
조수석과, 그 뒷자리가 온통 축축하게 되어 버려서
남편은 기사가 되고 ...
어정쩡한 자세로 난 운전석 뒷자리에서...
본의 아니게 기사가 모시는 사모님(?)이 되어서 출근을 한다.

운전하는 것도 그렇다.
운전하는 걸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밀리는 차량들 사이를 이리 저리 피하여
마치 미꾸라지처럼 휘젓고 다니는 운전 때문에
나는 또 아슬 아슬한 마음으로 사무실에 도착하는 내내
긴장을 하고 있어야 했다.

어디를 가던지
나는 미리 내가 가려 하는 길을 머리속에 그려두는 편이다.
그는 참 즉흥적으로 이리 저리 바꾸며 그때 그때 변하는
상황에 맞추는 쪽이라 때로는 시간이 더 걸릴 때도 있다.

옷을 입는 것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그날 그날의 분위기에 맞게 입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범주를 중요시하는 나와
그저 자신의 편안함만을 제일 우선 순위에 두는 그는
서로 많이 다른면 때문에 힘들어 한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젠 나 조차 매사에 대충 대충인 그가 되어 함께 녹아들어가
용해가 되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그가 꼬장꼬장한 마누라의 뜻에 따르는 일이 어려운 것 만큼이나
내가 그리하기란 어려운 일이지 싶다.

나의 그릇에 좋은아침을 하나 가득 담으려 했건만
그냥 쏟아져 버린 느낌...
뭔가 이게 아닌데...
하는 허전함이 밀려 온다.

서로 마주보며 살기 위하여 만난 사람들일터인데....
그와 나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서로 만나지기 어려운 평행선이 되어야 하는 걸까...

이 아침에
난 하나의 문제를 받아들고
나의 자그만 책상에 앉아서...
주관식 문제 하나를 풀어내야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마주칠 수 없는 평행선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아침을 맞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건지를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