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일층 곁방에는 조선족 부부가 산다.
아주 작은 방 한칸에 주방이랄 것도 없는 곳에
싱크대 달랑 하나 놓고 새댁은 식당에 나가고
아저씨는 공장에서 일한다고 한다.
이층 본체는 우리가,또 우리 옆의 방 한칸을 아직
결혼 안한 조선족 총각이 월세로 살고 있다.
주인 아줌마가 이사를 가고 난 다음에 비로소
얼굴을 알만큼 나는 그들의 얼굴도 모르고 여직 살았다.
며칠 전 추석 연휴 마지막 날 귀성길의 대장정을 마치고
집에 오니 이층 총각이 사는 단칸방에 불이 훤하고
술냄새, 담배연기 그득한 가운데 웃음이 왁자하니
창 밖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조선족 이웃들이 모여 추석 기분을 내는 모양이었다.
계단을 올라오다 얼핏 들으니 남자는 지조야! 지조!!
누군가 호기롭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빙긋 웃었다.
남자는 배짱이라는 말은 써도 남한에서 남자는 지조란
말은 옛말이 되어버렸는데 그 말에서 묘한 순박함이 느껴졌다.
올여름, 남편이 출장을 가고 없는데 우리집만 정전이 되어
당황한 적이 있었다. 낮이건 밤이건 두꺼비집의 차단기가
내려가서 누전이 되는건 아닌가 걱정이 되던 참이었는데
하필이면 남편이 없는 날 또 그리 된 것이었다.
불을 켤 수 있는 그 무엇도 찾지를 못하고 현관을 열고
비쳐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아이들과 있는데
일층의 조선족 아저씨와 옆방 총각이 불쑥 우리집으로 올라왔다.
"아주머이, 불이 나갔슴까?"
딸 둘을 겨드랑이 밑으로 끌어당기면서 순간 당황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올라왔지?
어머...할 틈도 없이 현관으로 쓱 들어오더니 식탁 의자를
끌어 와서는 일층 아저씨가 두꺼비 집을 살펴 보았다.
"세탁기 코드를 함 빼보십쇼"
"아니믄...어디서 누전이 되는거이 틀림 없슴다.
거...내일 사람을 불러야 갔구만"
하더니 두사람은 휙 내려가 버렸다.
나는 한마디도 못하고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얼른 현관문을 잠궜다.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야...
언제 봤다고 남의 집에 저렇게 들어온대?
다음날 사람을 불러서 보니 역시나 누전이었다.
그래도 이상한 사람들이야...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기들 마음대로 불쑥 들어오구...다음엔 절대
못 들어오게 해야지...
그런데 며칠 후 역시 남편이 아직 퇴근 하지 않은 저녁,
아랫 집 아저씨가 쿵쿵 현관을 두드린다.
현관 앞으로 다가서니 확 풍기는 술냄새...
또 간이 콩알만 해진다.
"아주머이, 옥상에 테레비 선 아주머이가 끊었슴까?"
이게 먼 소리랴?
"저눈 집에 오믄 말임다, 테레비를 탁 봐야 하는데 말임다,
테레비가 급작스레 안나온단 말임다"
아...일층에 이사온 새댁네가 케이블 설치한다더니
선 빼내서 공짜로 케이블 시청해온 조선족 두집의 선을
설치하러 나온 아저씨가 끊어버린 모양이었다.
조심조심 문을 열었더니 키가 작달막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아저씨가 나를 딱 마주보며,
"아주머이가 이층 아주머입네까?"
"네..."
"테레비 볼라믄 어케야 됩네까?"
"아...그거요?
돈...내고 설...치 해야 하는데요...
한...삼 만원 들거예요..."
"그러믄 아주머이가 전화번호 좀 알려주십쇼
아, 아닙네다. 며칠 있다 우리두 전화 놓으니끼니
그때 가서 알려 주소"
"네...."
휴...이 화상은 왜 이렇게 맨날 늦게 들어오는지 모르겠네.
이럴 때 자기가 있어서 남자끼리 묻고 답하면 얼마나 좋아.
일생에 도움이 안된다니까...
그리고 며칠 뒤에 일층에 전화가 들어왔다.
올 여름에 주민등록증이 나왔다고 하더니 아예 이 집에서
기반 잡을 때까지 눌러 살 모양이었다.
어제는 케이블도 설치를 했다.
주인 아줌마가 이사를 가고 난 다음 전기며 수도요금을
내가 계산을 맡았다.집집마다 전기요금을 받으러 가니
하나 같이 거스름돈을 받으려 하지 않아서 아주 난감하였다.
전기요금이 7,640 원이면 8,000을 주면서
동전을 거슬러 주려는 나에게 됐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거 생각 안하지"
처음에는 무슨 뜻인가...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잔돈은 신경 안쓴다는 뜻임을 알게 되었다.
십원 짜리도 주고 받으려 바득바득 따진 내 꼴이라니...
일이 있어 그들의 현관을 두드리면 들어오십시오...한다.
나 같으면 당연히 누구세요? 하며 문을 빼꼼 열고
고개만 내밀어 확인을 할텐데.
두 집은 또 대문을 닫지 않아서 나를 당황하게 한다.
밤 12시 무렵 쓰레기를 내놓기 위해 내려가면
도둑아 들어오슈...하듯이 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새벽 두시에도 대문이 열려 있어서
이웃집에서 닫아준 적도 있었다.
대문 일일이 닫아걸고 사람 확인하며 살아가는
습관이 몸에 배지 않은 탓이리라.
하긴 내가 어릴 때도 대문 닫고 살지는 않았었다.
누구나 열려진 대문으로 들어가 누구야...하면
들어와...했었다.
겉모습은 거칠어도 조선족 이웃을 보니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리고 우리는 왜 이리 따지고 못믿고
살게 되었나...새삼 옛날이 그리워진다.
몇백원 더 받은 전기요금이 목의 가시처럼 신경이
쓰였는데 오늘 그 해결책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다음 달부터는 조선족 두집의 전기, 수도요금은
천원 단위로 계산을 하고 모자란 것은 내가 조금
더 내면 되는 것이다.
어휴...이런 것까지 계산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들이 남한사람 어지간히 계산적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시골에서 가져온 고구마라도 나눠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