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원대한 꿈을 먹고 살았고
그후 스믈 세살 꽃다운 나이에는 그 꿈을 접고
人生이란 深淵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한 남자를 내 꿈과 인생으로 포장해서 열렬히 사랑했다.
그것이 진정한 삶의 의미인즐 알았다.
또 그렇게 내 인생은 휘말리며 세 아이들을 나의 테두리에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시집의 몰락과 함께 내 생활도 엉망 진창이 되었고
시아버님의 죽음과 잇따른 시어머님의 중풍....
이렇게 생활은 궁핍과 고통으로 악화 일로를 달렸다.
30대. 여전히 치열한 삶의 현장
반신불수의 시어머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성격의 내남편!1
그리고 나만 바라보는 년년생의 세 아이들...
그렇게 30대를 투쟁하며 보낼즈음
나를 그렇게도 무시하고 미워하고 힘들게 하시던 시어머님은
무덥던 여름날 나의 다리를 한없이 쓸어내리며 눈물을 흘리시더니 하늘나라로 가시었다.
그 세월이 12년 !!!
내 나이 42 살
허리펴고 고개들어 보니 하늘은 여전히 파랬다.산천초목도 그대로였다.
내 자신의 얼굴이 거울에 비쳐 스첬을때
왠 구부정한 아줌마가 서있었다.
구정물 적신 삶의 흔적을 가득머금은 얼굴은
분노와 한을 삭히고 숙성시킨 시큼한 공허함이 윤기없는 머리카락사이를 헤집는다.
그래도 남편은 나의 지주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후 이 남자 남편의 이름으로 나를 배신했다.
왜 그 나이의 남자들은 가정을 떠나 배회할까.
사업한답시고 친정식구들과 친구들 인간관계 다 끊어놓더니.
이제와서 바람이라니....
나는 가슴치며 절규했다.증오하고 분개하고 하지만 남은것은 나혼자만의 고통과 한뿐이다.
나는 그 순간부터 내 사랑했던 남편을 포기했다.
아니 마음속으로부터 버리기로 했다.
내가 살아온 의미도 세월속에 묻었다.
미워도 말고 원망도 말자고 피눈물을 머금고 멩세했다.
오로지 내 살같은 아이들을 위해서 백조처럼 살기로 했다.
겉으론 고고하고 아무일없이 여유롭듯이
물밑에선 발버둥치는 백조의 발놀림처럼....
남편의 사업으로 진 빚의이자를 딸아이의 장학금으로 줘야하는 현실앞에선
녹아내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이를 악물어야 했다.
이렇게도 살아내야했다.
이것이 나의40대초반의 초상이었다.
그래도 살아지는게 인생이랬다.
이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아이들은 곧게 자라주었고 명문대학교에도 들어가줬다.
따라서 나에겐 아이들이 희망이요 등대같은 불빛이었다.
그런저런 실타래에 얽힌 내 삶은 절망과 희망의 극과극의 연속이었다.
이젠 그 세월에 밀려 수양과 도를 넘어서 내 남편을 측은지심으로 안으련다.
이것이 내 자신과 아이들의 앞길에 방패막이 아니련가...
잠깐의 방황접고 돌아온 내남편은 어느새 지천명, 나도 급히따라가는 인생길이다.
미운감정도 그렇다고 렬렬한 사랑도 없는 우리부부.
내자신 남편에 대한 모든것을 포기할거라 멩세했는데
왜 하늘만 봐도 울화가 치밀까.
왜 바람만 스쳐도 눈물이 날까.
오늘도 나의 연못엔 백조한마리가 보이지않는 처절한 발부림으로 유유히 흘러간다.
이것이 내가사는 이유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