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조금씩 남편에게 실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십 년 동안 쌓이고 쌓여서 남편과 함께 사는 일이 참으로 버거운 일이 되었습니다.
함께 사는 일이 너무도 힘 들게 느껴져 두 번은 죽겠다고 약을 먹고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하였습니다.
불화하는 부모 사이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자랄 리 없었습니다.
두 아이 모두 고등학교를 다니다 그만 두었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남편과의 싸움도, 내 죽음도, 해결책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사는 게 버거워 죽음의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너무도 사는 게 힘 들어 신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깐 신이라는 게 어디 있느냐고 코 웃음 쳤었는데 무릎을 꿇었습니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 당신이지만 믿을 테니 제발 날 좀 도와 달라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는 내 주인이기를 포기했으니 제발 내 주인이 되어 내 삶을 책임져 달라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불 가능해 보였던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미친 년, 또 죽을래? 죽어 봐."
이렇게 말하는 딸에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예전에는 엄마가 잘못했어. 이제는 죽지 않아. 이제 엄마 주인은 엄마가 아니거든."
그리고 딸과의 충돌을 피해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순종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순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하였으니까요.
주께 하는 순종은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따지는 게 아니었으므로 남편에게 순종하는 일에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으려했습니다.
겉으로 순종하는 일은 가능했지만 마음은 괴로울 때가 많았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난 내 주인이 아니니 이제 내 목숨을 스스로 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는 게 너무 힘듭니다. 날 빨리 죽게 하시든지, 남편에게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게 하시든지, 아니면 남편이 달라지게 해 주세요."
일단 겉으로나마 우리 집에 평화가 깃드는 듯이 보였습니다.
아이들도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진학해서 집을 떠났습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는 창녀 노릇도 기꺼이 하겠습니다."하는 마음으로 남편이 하자는 대로 하면서 마음은 기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으로 가득찰 때가 많았습니다.
억지 소리 잘 하고, 욕심 많고, 성미 급한 남편과 죽을 때 까지 함께 살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억지소리하는 남편에게 대꾸하는 대신 상냥하게 대하고 난 다음 날이었습니다.
억울한 마음에 기도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못 하고 잠깐 앉아 있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소스라쳐 잠에서 깨었습니다.
꿈 속에서 나는 남편을 죽이려 하고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것도 포기하고 엉엉 울었습니다.
이 십 년 동안 억지 소리 듣고 산 것이 억울해서 엉엉 울었습니다. 이 것 때문에 신에게 가까이 다가 갈 수도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 억울해서 통곡을 했습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었습니다.
엉엉 울고 있는 내게 십자가를 메고 산 길을 오르는 예수의 모습이 떠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어?" 나는 울음을 그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상하다. 예수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나는 지금 억울하다고 엉엉 울고 있는데 예수는 나보다 훨씬 억울했을텐데 저렇게 잠자코 가고 있네. 내 억울함에 비 할 수 없이 억울 했을텐데......나는 이렇게 엉엉 울고 있는데......."
내 생각이 여기에 미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 번에는 이런 귀절이 머릿 속에 떠 올랐습니다.
"누구든 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그럼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따를 수가 없다는 말이구나.
그렇구나, 예수를 따르려면 십자가를 지고 따라 가야 하는구나.
십자가가 없으면 따라 갈 수가 없구나.
그럼 억울해도 참아야 하는 게 내 십자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이 번에는 예수등에 있는 십자가가 눈 부시게 반짝이는 환한 길로 바뀌어 보였습니다.
아, 그렇구나.
남편이 내가 예수를 따라 갈 수 있는 길이구나.
내 앞에 펼쳐진 눈 부신 길을 넋을 놓고 바라 보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너무도 기뻐서 나는 미친 년 처럼 웃었습니다.
절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그칠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고맙고 예쁘게 생각 되었습니다.
내 앞에 펼쳐진 눈 부신 길 처럼 남편이 내게 눈 부신 보석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남편과 나는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게 되었지요.
콧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 날 아침 남편을 위한 식사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제 남편과 사는 일이 고맙고 기쁜 일이 되었습니다.
고민은 남편이 더 이상 날 억울하게 하는 일이 없어져 새로운 십자가를 찾을 필요가 생긴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