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랑 날랑 하며 미국에서 산 세월이 십 여 년, 미국으로의 이민을 결심하고 영주권을 받은 지 십 개월, 무엇을 하고 살것인가 망설이다 부동산 중개인을 해보기로 하고 남편과 함께 자격증을 받았다.
부동산 중개인이 되기위해 중개인 협회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는 날이다.
미국에서 산 세월이 제법 되지만 영어도 서툴고 컴퓨터도 서툰 내겐 긴장되는 날이다.
더구나 집에서 살림만 한 세월이 이 십 년이 가깝고 취미 활동이라는 것도 바느질이나 꽃가꾸기였으니 도움이 될 리가 없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잘 난 체 하며 살았다.
무엇이든 하면 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치고, 난 재벌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흰소리도 하였다.
언니에겐 스포츠 카를 사주겠다고, 남편에겐 날마다 골프나 치며 놀 수 있게 해주겠다고, 딸에겐 엄마가 돈을 많이 벌테니까 학비 걱정은 말고 원하는 공부를 하라고 하였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 그만두고 이민을 결정한 남편이 불안해 할 때마다 옆에서 말했다.
지금은 우리에게 위기가 아니고 기회라고...
신나는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 우리의 인생을 즐기며 살자고...
그런데 컴퓨터 교육을 받으면서 나는 그만 씁쓸해지고 말았다.
영어로 숫자를 듣는 것, 컴퓨터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헤매는 것이 내 몫이었다.
함께 교육을 받는 십 여명 중에 나 홀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이건 정말 낯 선 경험이다.
숙제도, 예습도, 복습도 안해가도 난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었는데...
아, 그것은 그만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나보다.
교육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데리러 오기로 한 남편이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해 보니 핸드폰도 꺼져있다.
집에도 아무도 없는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아직 교육이 끝나지 않았는데 내가 잘못 알아듣고 미리 교육장소를 벗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들어가 보니 우리를 교육하던 사람이 교육실 문을 잠그고 있었다.
서툰 영어가 항상 말썽이다.
제대로 듣고도 사람을 자신없게 만들고 불안하게 한다.
멋적어서 한번 더 땡큐를 하고 볼 일도 없는 화장실에 들렸다.
다시 나오니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
평소와 달리 기가 죽어 있는 날 보고 남편이 눈치를 채고 위로를 한다.
나보다 일 주일 먼저 교육을 받은 남편이 사정을 짐작한 것이다.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도 나는 시무룩해 있었다.
집에 돌아와 가방만 집 안에 던져 놓고 답답한 마음에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던 꽃들을 바라보고 있어도 좀체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뒷 뜰에서 서성이는 나를 보고 남편이 베란다에 서서 위로를 한다.
당신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나다운 일이 아니다.
평소의 나라면 다른 사람이 조금만 부추겨주면 하늘로 붕 날아올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잘 난 체를 하였으니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가 않다.
평소와 다른 내 반응에 남편이 불안한 모양이다.
그런 남편이 안쓰럽다.
집 안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평소의 나답게 어리광을 부린다.
"당신이 짜파게티 끓여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데..."
남편의 얼굴이 금방 환해진다.
남편이 끓여 준 짜파게티를 먹으며 마음을 다시 다진다.
죽는 순간까지 난 잘 난 체 하며 살자고...
그렇게 마음을 다져도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이제 새로운 모험의 세계로 떠나기엔 내가 너무 나이 든 것은 아닐까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