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언니가 아들 낳았대요..."
평소에 표정없으신 친정아버지께서도 활짝,
난 팔짝팔짝 뛰면서, 금메달이라도 딴 선수인 양 기뻐했더니
"지가 애기를 낳은 것 같네..." 하시며 엄마에게 말씀하셨다.
딸 넷에 아들하나인 우리집, 언니들마져 시집을 가서
딸잔치를 여는 틈에, 난 엄마와 언니의 바램을 누구보다 알고
있었기에 딸딸이 밑에 낳은 아들은 금지옥엽.
25년만에 드디어 귀한 아들이 생겼다.
그때 울아버지는 순간적인 실수로 5명의 가족외엔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으신채, 가장을 사표내셨다.
형제봉 산허리에 초가집 옆칸이 우리집이었다.
울언니는 아저씨,아줌마들이
한창 일하시던 사방공사를 하러 다녔다.
친구들 학교가고 오는 길 옆 산등성이에서 사방공사를 하고
쉬는 날은 산에가서 땔감과 산나물을 해왔던 우리 언니..
언니의 머리는 늘 붕떠서 까칠까칠한 수세미 같았는데,
서울생활 후 바시시했던 언니머리가 찰랑찰랑해질 그 무렵 난 우리 언니가 영양결핍으로 인한 부작용이라는 것도 알았다...
늘 친구들의 비아냥과 웃음을 뒤로한채 고생을 있는그대로
받아들였던 우리언니에게 딸둘 다음 아들출산은 내 최고의
기쁨이기도 했다.
가뜩이나 귀여운 녀석이 말은 얼마나 잘하는지,
고추달린 귀여운 아들녀석 키우면서 언니의 지난눈물은 여름날
굵은 빗줄기에 다 실려갔으리라.
아이들 데리고 집에 앉아서 부업하랴,살림하랴 힘들지만,
그 힘겨움은 한낱 새벽운동쯤으로 여기리라...
언니의 그 힘찬 생활력은 계속되고 행복엮는 소리가 들리던 그 때
.... 3년을 아직 살지않은 아기에게,
갑자기 실핏줄이 지워지지 않아 소아과를 갔다가, 큰 병원으로...
tv에서나,성금 1000원으로 지나쳤던 그 이야기가 우리집을
찾아왔다.
급성인파구성 백혈병.....
믿기 싫었지만, 듣기도 싫었지만 현실이었다.
그 귀엽고 앙증맞은, 어렵게 얻은 아들에게.. 하느님을 불러봐도
이미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고,
순간 아이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이 나를 절망속으로 빠뜨렸 다.
병원에서 본 언니의 모습은 처절하다 못해 담담하기까지 했고
물에빠져 지푸라기조차 잡지않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언니는 힘찬 빗줄기가 무색하리만큼 눈물을 토해내었다.
"언니, 하느님은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주신대.
꼭 나을거야. 힘내"
1년 후, 언니의 귀여운 아들은 끝내 떠났다.
조카가 세상에 없어진다는 사실이 이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그 후, 언니의 절망이 더 무서웠다.
따라간다고 하는 건 아닐까? 형부한테 약병이 있는지,늘 옆에서
지켜보라고 하면서.
언니는 세상의 허무감과 우울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아마 그때 언니는 무서움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때 언니마져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무서움은,
어릴시절 귀신의 두려움보다 훨씬 짙게 남아있다.
40평생 고생만 알아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었던 언니..
이젠 그 행복이란 단어만 알아서, 하늘나라에 간 아들을 위해
기도하며, 남은 삶을 곱절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너무나 행복해서 유치하리만큼 작은 것이 무서운, 작은 벌레가 무서운 그날을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