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등학생일때.
친구와의 대화.
"난 아이를 안낳을꺼야."
"어, 나두. 넌, 왜?"
"세상사는것이 너무 어려워서. 내 아이를 아프게 하기 싫어. 사는건 너무 어려워. 그래서 사랑하는 내 아이를 위해서 아예 안낳을꺼야."
"나두 !!!!"
마음이 딱 맞은 우리는 반가와서 둘 다 얼굴이 환했었다. 그 친구는 지금 뻔뻔하게도 애가 둘이다. 더욱 뻔뻔하게도 그 친구의 큰 아이는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의 아가씨이다.
어제.
면접을 한군데 갔었다. 한마디로 치욕적이였다.
내 입술은 여전히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 입술속의 이빨은 뽀드득 갈리고 있었다.
가장 예의를 차려서 할수있는 말은.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면접 오라는 전화를 주지 마시지 그러셨습니다. 허허허" (끝의 허허허는 마지막 존심이였다.)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허리가 휘청해서 나오는데.
뚜뚜뚜.
핸드폰.
"공주 선생이십니까?"
지난주에 면접을 갔던 곳에서 온 전화였다. 반가움에 눈물이 다 핑 돌 정도였다.
"어이구, 선생님. 접니다. 안녕하셨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구 터지는 반가움.
취직이 되었단다. 내 입은 짝 찢어졌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당분간 토요일만 일을 해달라나.
정말로 핸드폰을 바닥에 집어던질뻔 했다.
"이 자식아, 너 장난치니?"
물론 이 말은 못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끝머리에 허허허를 붙이며 정중히 거절을 했다.
담배 끊은지 몇 년만에 담배를 한갑샀다.
주차장, 차 속에 앉아서 담배를 뻐끔 뻐끔 피우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본다.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을 나도 같이 쳐다봤다.
물어보고 싶었다.
저 참 재미있게 생겼지요?
거울속의 내 모습은 참 재미있다.
애처로와 보이기도 하고 조금은. 아주 조금은 고소해 보이기도 한다.
별거 아니다.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허리가 휘청해도.
지금의 이 시간은 별거 아니다.
벌써 오년쯤 지났나. 이틀을 밤,낮으로 혼자사는 아파트에 틀여박혀 엉엉 대성통곡을 한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억울해서 였다. 내가 나 자신에게 투자를 한 만큼의 출세와 행복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영 아닌것이 원통하고 분해서 한번 실컷 울고, 그 후로는 지금껏 담담하게 살았다.
다시 화가 나려고 한다. 근데, 화가 난다는 말을 하면서 씩 웃는다.
화가 나는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나즈막한 언덕때문이 아니다.
높은 산을 몇번이나 기어넘었던가.
내가 죽나 니가 죽나 끝까지 해보자라는 극단적인 광기로......... 얼마나 힘겹게 기어넘었던가.
그래서 별것이 아니다, 내 눈앞의 나즈막한 가소로운 언덕이.
화가 나는건.
이 언덕을 넘어봤자 또 다른 언덕이 있다는것이다.
이제는 높은 산은 없을것이라고 예상해보지만, 그것도 모를일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더 어마어마한 시퍼렇게 치솟은 산이 내 삶에 또 있을런지도 모른다.
나는 이틀이 아닌 일주일, 혹은 몇달을 억울하다고 또 대성통곡을 하느라고 박혀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화가 난다.
나를 쥐고 마음되로 뒤흔드는 삶.
나를 웃기고 울리고 하늘위로 실컷 둥실 띄어놓았다가 단숨에 땅속으로 쥐어 박아버리는.
삶.
내가 그걸 지금 알았을까.
산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하던 고등학교.
그 시절의 약속되로 나는 다행히 아이를 낳지 않았다.
어제밤 남편은 책을 펴들고 공부를 시작했다. 또 다른 면허인지 자격증인지를 받을 작정이란다. 공부한답시고 당당하게 커피까지 끓여달라고 하더니, 책 본지 한 10분 지나니까 고개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가만히 보고있자니 저러다 책상을 이마로 받아서, 책상 깨어질까봐 겁이 난다. 자라, 자 하면서 손잡고 데리고가 침대에 눕혀놨더니, 혼수상태가 되어 드르릉, 드르릉 코를 곤다.
자는 얼굴이 어린 아이같다.
덜컹 겁이 났다.
내 인생은 내 맘되로 망칠수 있어도, 내가 당신들의 인생의 일부분인 부모님. 그 부모님의 인생을 나로 인하여 망칠수가 없어서 살아온 시절이 있었듯이.
나.
이제 이 남자의 인생까지 책임져야 하는것일까.
어제밤 기도에서는 난 아무말도 하지 않고 무언의 시위를 했다.
아실것이다. 내가 왜 또 뿔이 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