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55

낯선 남자의 프로포즈


BY 올리브 2003-07-01

어릴적 내가 살았었던 인천에 친구를 만나기로 약속하던 날...

한참을 살았었던 인천이 이젠 찾아가기 힘든 장소로 변해가는게 싫어서

일부러 인천행를 감행했다..

 

다리가 망가진 운 없었던 두달내내 갇혀지낸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고

싶어서 억질 써대면 인천에 가겠다고 했다..

 

일산에서는 볼수도 없는 지하상가를 지나치면서 낯설게 느껴지는게 부담

스럽기도 했고 어쩐지 모든게 어색하고 내것 같지 않아서 답답해져왔다.

 

역 광장이 많이도 변했다는것을 느끼고 그래도 어쩐지 많이도 조잡하고

복잡하게 보여지는게 조금씩 짜증이 날무렵 다리가 아프다고 느꼈을때..

 

'' 저.. 잠깐만... 저기...''

 

요즘 아직도 저런 머저리 같은 대사가 있나?  뭐야.. 영업하는 사람이야?

 

'' 네? ''

 

'' 제가요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했거든요.. 근데 지금 바로 인상이 너무

  좋고  아까운 여자가 지나가는 거예요.. 많이 들었죠? 이런소리...''

 

나원.. 참.. 다리 아파죽겠는데.. 오랫만에 다리 망가지고 샌달이 신고 싶어서

억지로 신었더니 발가락들이 까지고 난리가 났는데 뭔 소리냐고..

 

'' 나요.. 지금 저어기 가야 하거든요.. 그리고 나 .. 다리도 아프고...''

 

'' 아.. 그럼 거기까지 같이가요..  해줄말이 있거든요.. 나도 거기 가야하니깐..''

 

그때부터 내 맘속에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분노 비슷한 억지감정땜에 어찌할줄

몰라서 얼굴을 신발쪽으로 떨구다가 다시 그 남잘 쳐다보았다..

 

이 남자 몇살이야... 뭐냐구...

 

대꾸하기도 귀찮아서 일부러 더 씩씩하게 약속장소를 향해 걸어가는데 내 팔을

잡아 끌더니 꼭 해줄말이 있댄다.. 그래서 난 막 참았던 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 아저씨... 나..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구요.. 이제 관심 없어졌죠? ''

 

'' 아.. .. 아... 맞아요? ''

 

'' 나 가도 돼죠? ''

 

세상이 참 많이도 바뀌었건만 아직도 아줌마 아가씨 구별도 못하는 저 미련한 남잘

떨쳐내고 걸으면서 아픈 다리땜에 더 당황하고 짜증난 시간이었다..

 

드디어 약속장소가 보였고 좀 이르게 도착해서 앉아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도 막 도착했고 날 보고는 무안하게 웃다가 다른 의자에 앉았는데

몇분후에 뒤따라 들어오는 여잘 보고 난 기 막혀서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 직감으로 그 여자의 배는 분명 분만 예정일에 임박한 산처럼 불쑥 솟아오른 배를

감싸안고 너무도 당당하게 그 남자옆에 앉는거였다..

 

'' 오빠... 언제 왔어? ''

 

'' 그만 일어나자.. 다른데 가자.. 여기 별루다..''

 

'' 좀 있다가 가자.. 나 힘든데..''

 

묘한 대사가 내 귀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난 슬며시 장난스런 웃음이 나오는걸

막아내느라 고개들어 한번 그 남잘 보고 다시 그 여잘 보고 ... 그러다 창 밖을 한번

더 쳐다보고..

 

내가 할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멀쩡하게 깔끔한 그 남자도 결혼한 남자였던 거다..

 

결혼한 남자.. 결혼한 여자 ...

그리고 그런 남자의 잠깐의 억지같은 프로포즈...

 

오랫만에 인천에 가서 내가 받은건 남잔 역시 남자고 여잔 역시 여자란 사실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컴컴해진 창밖을 보다가 문득 아마도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내 남잔 어떤 남자일까.. 하는 상상으로 몹시도 궁금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