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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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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에 미친 이유


BY 이화 2001-09-21

언니와 나는 전화를 하면 보통
한두시간이 기본이다.
나...서울
언니...포항
전화요금...좀 나온다...

연년생 아이들을 키울 때
전화요금 고지서만 보면 싱긋 웃는 남편에게,

"아무 말 하지 마!
내가 바깥 세상이랑 연결되는 단하나의 낙이야
전화라도 안하면 나는 미친다"

그러면 남편은,

"내가 뭐라 그래?
전화 많이 해
난 당신이 하는 거면 다 좋아
그런데...(한참 뜸 들이다)
맨날 처형이랑 무슨 이야기 해?"

완벽한 성격인데다 아이들 때문에 널부러진 집안을
이웃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얄팍한 자존심 때문에
바깥 마실을 거의 하지 않고 지내던 그때,
언니와의 전화는 내가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던
유일한 통로였다.

그때 내가 쏟아놓았던 이야기대로라면
남편은 천하에 없는 난봉꾼이요,
시누이는 잔머리 비상한 곰탱이이며
시어머니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모이고
시할머니는 시댁의 숱한 분란의 근원지,
게다가 직업도 없으면서 일년이면 두번씩
차를 바꿔대는 시동생은...
이런 가운데 있는 나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결혼 잘못한 여자요 불행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언니는 발작과 저주에 가까운 나의 모든 하소연을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 되든 다 들어주었으며
전화를 끊을 때 즈음이면 그 후련함으로 하여
내 스스로
그래도 * 서방 착하다...
우리 엄니도 좋은 사람이다...
고백성사 하듯 중얼거리면 그제서야 언니는
그래, 다음에 또 전화 해라...

내가 이날까지 이혼하지 않고 사는 것은 온전히
언니의 공이다. 그리고 사실 시집 식구들이
내 말처럼 평범한 사람들인 것만도 아니다.
빈 말로라도 온갖 어려움을 안으로 감을 수 있게
만드는 그 무엇, 그것이 언니의 힘이었다.

그런데 그런 언니가, 나처럼 바깥 나들이 싫어하고
사람 싫어하고, 애들 키우고, 죽으나 사나 책만
디립다 읽어제끼던 언니가 어느 날인가부터 전화연결이
잘 안되더니 집요한 나의 추궁 끝에 털어놓은 이유는
충격, 그 자체였다.

말인즉슨 춤을 배우러 다닌단다.
YWCA 에서 하는 스포츠댄스 강좌란다.
벌써 이년이나 되었단다.
처음엔 자기도 인식이 안좋았는데
운동도 많이 되고 아주 건전하며 자기 같은
중년 여성에겐 더없이 좋단다.

나는 어안이 벙벙 하였다.
결혼과 동시에 운동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하는 나를
이상한 동물 쳐다보듯 하던 언니가 운동이라니...?
그저 책 읽으며 나이에 맞게 두리뭉실 살이 찌는
지금의 삶이 너무 좋다며 침을 튀기던 언니가...?

얼마 못가 때려치겠지...했던 예상과는 달리
언니의 춤에 대한 열정은 식지를 않았고 올초에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고급반으로 승급을 하였다.

그곳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많이 사귀고,
무엇보다 언니와 동갑이면서도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섹쉬(!)하고 젊고 이뿌고 탱탱한 춤선생(언니의 표현)을
보면서 잊고 있던 여자로서의 자신에 대해 되돌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뜨악~~~~하니 보던 형부도
언니가 없을 때 내 전화를 받으면

"어~~~~처제, 언니 춤 추러 갔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이상한 대화지만...

그런데 언니가 연초부터 나를 살살 꼬드긴다.
뿐만 아니라 이제 결혼 반년 된 동생에게도
같은 말로 꼬신다.

너거들도 춤 배워라...
너무 좋다
기혼 여성들에게는 딱이다
우리 같이 배우자...

그 소리를 남편에게 전하니 남편이 그런다.

"처형, 친언니 맞어?"

남편이 펄쩍 뛸 일이지만 이 가을에 나도
춤을 배워보려 한다. 전화할 때 마다 춤에 대한
예찬론을 펼치는 언니의 주장에 동조해서가 아니라
언니가 춤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에 동감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오십, 육십이 되어도 책만 읽을 줄 알았지
도대체 책 보는 것 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이렇게 생각했지
너도 알지? 내가 얼마나 책을 좋아 하는지...
그런데...나이 들수록 사람은 사람 속에서
부대끼는게 제일이더라...
취미생활 하면서 자기 생활 열심히 하는
사람들 보니까 책보다 더 배울 것이 많더라...
책은 그동안 많이 읽었으니
이젠 땀 흘리면서 왁자하니 살아볼란다...
너도 이제 그만 갇혀 있고
나와서 사람들하고 어울려라
지금 사람들과 안어울리면 겁이 나서
영영 못하게 된다...

평범치 않은 성격을 가진 우리 형제가
세상과 어떻게 어우러져야 하는지
언니는 먼저 시범을 보인 것이다.
춤을 배우겠다고 처음 나선 그 순간이
언니에겐 우주가 빅뱅을 일으키는 것 만큼이나
엄청난 변혁이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인터넷으로 세상과의 또다른 물꼬를 튼 것도
사실은 일방적인 토로가 가능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겹겹이 쌓인 나의 공간, 나의 생각에
누가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던 나였다.

인생을 먼저 살아가는 언니는 몇 년 뒤 나와 동생이
겪을 세상과의 부조화를 마치 나뭇가지를 쳐내고
무성한 풀더미를 걷어내며 숲 속을 앞장서 가는
리더처럼 우리에게 길을 내주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춤자매의 탄생이 임박하였다.
말발 센 나의 주장이 먹혀들어갔는지
어제는 퇴근한 남편이 그런다.

"당신 혼자 춤 배우러 못 보내지
부부가 같이 춤 배울 수 있는 동호회 같은거
인터넷에서 한번 찾아봐.."

춤자매에 이은 춤부부의 탄생
여러분 기대하시라
com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