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침 방송에서 병든 아버지와 고등학생 여동생을 부양하는 청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피자 배달을 하다보면 각 집 마다 냄새가 있다고 합니다.
부자와 가난한 것에 관계없이 따뜻하고 행복한 집 냄새가 있다고요.
그런 집에 배달을 가면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 피자도 천천히 꺼내고
말도 많이 하고 싶어 진다고요.
제가 아는 노부부가 있습니다.
두분 다 여든이 넘으셨는데 참 많은 재산을 가지고 계시답니다.
물론 재산이라는 가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서민의 입장으로 보면 자식 서 너 명쯤 스무평 짜리 아파트 한 채씩, 작은 자가용도 한대, 그리고 얼마간 비상금까지 챙겨주어도
당신들 20년쯤 더 살아도 생활비걱정 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하면 이해가 되실까요?
물론 그 동안 자식들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얼마쯤은 사업한다고 자식들한테 뺐끼기도 했다지요.
암튼 자식들은 당신들 생각대로 출세도 하지 못하고 돈도 벌지 못하고, 병들고 능력 없이 나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잘나가고 큰소리 치는 자식들 자랑하는 친구들 볼 때마다 화가 나고 자존심 상하고,
그러나 바보스러울 정도로 너무도 착해 육십이 다되가는데도 여전히 부모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는 자식들이 소중하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합니다.
노부부는 그렇게 늙어 가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총기 있던 두 분도 세월 속에 점점 기력이 빠지는 것을 실감하면서
얼마쯤은 외롭고 쓸쓸하고 다정한 말벗도 필요하지만 자식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탐내는 것 같아 불안해서 자식들이 찾아 와도 반갑게 맞이하지 못하고 그런 부모에게 마음이 떠난 자식들은 부모의 노년을 이해하고 감싸고 싶은 마음들은 추호도 없습니다.
행여 부모의 노환이 깊어진다해도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수발을 하려는 자식은 없습니다.
재산이야 언젠가 부모가 돌아 가시고 나면 상속이 되겠지요.
그렇다고 그동안 자식들이 불효를 한 것은 더욱 아닙니다.
부모의 원망과 비난, 말도 안 되는 역설로 몰아 부쳐도, 더구나 이미 성인이 된 손주들 앞에서 도무지 부모의 자존심은커녕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는 수모를 수도 없이 겪으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는 자식들 이랍니다.
노부부는 점 점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생각을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식들과 대화가 단절 된 지는 이미 오래 전이고, 따로 사는 자식들은 일년에 서 너 번 의무적으로 방문을 하지만 아직도 자식들에게 심한 언어 폭력도 불사하는 부모와 말 섞는 것조차 싫어 전화 문안조차 회피하고 있지요.
부인과 이혼을 하고 한 집에 같이 사는 아들이 있는데, 부모 자식간에 하루에 다섯 마디도 하지 않고 아니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날도 허다하답니다.
그 몇 마디도 시도 때도 없이 당신들의 마음이 답답할 때 돈도 못벌어 온다고 쏟아 붓는 원망과 악담일 뿐, 아들이 먼저 말을 걸거나 다정하고 사랑이 담긴 대화는 상상도 할 수 없답니다.
식사를 같이 하는 날도 어쩌다 다른 자식들이 찾아 왔을 때 정도이지 노부부는 둘이서,
아들은 대접에 밥이나 반찬등을 담아 가지고 자기 방에서 혼자 먹습니다.
그 집에 들어가면 항상 가슴이 답답합니다.
무언가 모르는 어둠과 감지할 수 없는 불안,
답답하고, 창문을 다 열어도 공기가 부족한 것 같은,
지금도 자신의 가정 밖의 사람들한테는 더없이 친절하고 다정하고, 세상에 둘도 없는 노부부의 모습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저렇게 늙어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저런 부모를 돌보지 않는 자식들은 벌 받아야 해" 라는 비판을 하기도 하지요.
그 노부부의 마음속의 진실은 어떤 것일까요?
또한 우리에게 눈으로 보여지는 진실은 어떤 것일까요?
과연 그 자식들은 비난을 받아야 할까요?
노부부에게는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돈이 당신들을 평생 지켜주는 힘이고, 위안일까요?
집안에 갇혀 사육되다 시피 하는 아들은 몸과 마음이 병들어 폐인이 되어 가고 있는데,
노부모에게 돈 잘 벌어 호강 시켜 드리지 못하는 자식은 아들이 아닐까요?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주고 또 주어도 끝없이 주고 싶은 것이라고 누가 말했을까요?
앞으로 이십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하는데 행여 자식들에게 돈을 주었다가 당신들의 생활비가 모자라면 어떻게 하나?
노부부는 아직 죽기는 너무 아깝기 때문에 더 살아야 한다고 열심히 운동을 하고,
좋고 이름 있는 병원에 정기 검진도 거르는 법이 없답니다.
이제 이십 년밖에 살지 않은 ,
그 노부부에 비해 엄청나게 가난한 청년이 맞고 있는 그 행복의 냄새,
따뜻하고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 냄새는 정말 돈과는 전혀 무관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믿음과 사랑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오묘한 조화가 아닐까요?
노부부는 지금도 자식들이 어쩌다 다정한 안부 전화를 하던가 찾아 오기라도 하면 반가운 것이 아니라 경계 태세에 들어 갑니다.
''''분명히 돈을 뜯어 가려는 속셈일거야''''
노부부는 지금 정말 행복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