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도요아케시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조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14

잠자리의 비밀


BY 마음자리 2003-06-27

지리산 노고단하면 우리 아이들은 잠자리를 기억한다.
내 손가락 끝에 앉던 빨간 잠자리. 그 기억이 선명했나보다.

나에겐 그 여름의 휴가가 그동안 원인을 모르고 앓던 아내의 여러 병들이 루프스로 인해 비롯된 것임을 알게된 휴가였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병보다는 그 여름 선명했던 그 빨간 고추잠자리를 더 잘 기억한다.

노고단을 오르는 길에는 잠자리가 유난히 많다. 지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서인지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잡아보고 싶어하는 호기심 그득한 두 아이의 눈.
9살의 딸 아이와 4살의 아들 아이. 98년의 여름.

"잡아 볼까?"
두 아이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진다.

"잡지 말고 친해지는 거 가르쳐 줄까?"
"친해질 수도 있어요?" 동그랗게 커지는 의아한 눈빛.

"쉿...아무 소리도 내지말고 제 자리에 가만히 있어..."
두 아이. 기대 가득한 눈으로 제자리에 숨죽이고 섰다.

가까이 잠자리가 많이 나는 곳에 가서 가만히 앉았다.
숨을 죽이며...손가락 다섯개를 좍 펼치고...눈을 감았다.

까마득한 기억 속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

.
국민학교 시절의 여름방학. 곤충 채집은 늘 부담이었다.
투명한 샐로판지 안의 못핀 하나 중간에 꽂힌 짧은 수수깡대는 채집 곤충들을 기다리고 있는 십자가 같이 보였다. 

풍뎅이들이 모이는 비밀의 나무를 알고나서 상당 부분 고민이 해소되었지만...풍뎅이 일색이라 잠자리도 한자리 채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대나무 잠자리 채를 가지고 수도산에 올라 잠자리 무리를 따라댕기며 수많은 헛손질.

조그만 잠자리 채 구멍에 잠자리 한마리 집어넣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어쩌다 재수좋게 잡고보면 날개가 부러지거나 머리가 떨어지거나 성한 모습을 가진 잠자리는 드물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잠자리들의 생태를 물끄러미 관찰하다가 문득 좋은 생각하나가 떠올랐다.

''그래~ 내가 바위가 되고, 나뭇가지가 되어보자~''
새로운 호기심. 새로운 도전.

잠자리들이 많이 모인 풀숲에 들어가 왼손 꼿꼿이 펼쳐 세우고 가만히 앉았다.

''움직이면 안돼...바위가 되는거야...나뭇가지가 되는거야...''
.
.
.
기다림.
.
.
.

드디어 무리들 중에서 호기심 많은 녀석 하나가 옆 풀 끝에 앉았다가 핑 날아와 내 손가락 바로 앞에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멈추어서 날더니...
드디어 결심한 듯 내 손가락 끝에 사뿐 앉아서 날개를 내렸다.

까칠한 잠자리의 발느낌이 손가락 끝을 감쌌고 그 순간 타닥!
재빨리 오른 손으로 그녀석을 나꿔챘다.

푸드득 푸드득~
검지와 중지 사이에 녀석의 날개를 끼우고 손바닥에 가만히 대어 보았다. 뭔가를 붙잡으려는 듯...녀석의 발버둥이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느낌이 이상했다. 등에 못핀하나 꽂고 곤충 채집통 안에 박재된 채 꽂혀있는 녀석의 모습이 떠오르자 마음 속에서 강한 거부감이 왔다.

''그러면 안돼~'' 나직했지만 거역하기 힘든 소리였다.
남는 미련에 몇번을 더 가지고 놀다가 슬며시 녀석의 날개를 잡은 손가락에 힘을 풀었다.

푸드득 푸드득~ 몸서리를 치면서도 내 손바닥에서 잠시 더 머물던 잠자리가 핑~ 동료들에게로 날아갔다.
잠자리 날아오른 하늘에는 햇살이 눈부셨다.
.
.
잠시 후, 어릴 적 그때 그대로의 까칠한 느낌이 내 손 끝에 전해졌다.

천천히 눈을 뜨니 빨간색 선명한 잠자리 한마리 내 손 끝에 앉아있다.

환희에 가득찬 두 아이의 눈.

입을 오무려 말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두 아이는 끄덕 끄덕~
우린 서로 눈으로 통했다.
약간 떨어져서 서있던 아내가 환하게 웃으며 무비카메라를 눈에 댔다.

뒤이어 아이들 차례.

배운대로 득도한 고승마냥 눈을 감고 기대에 가득찬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금새...꼼지락 꼼지락...

가까이 다가오던 잠자리들이 다시 멀리 날아갔다. 아쉬워 또 다시 무리에게 달려가 바위가 되는 두 아이.

"아빠~ 우리는 왜 안되요?"

"응...그건 말이야...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거란다. 잠자리가 니 친구가 될거란 믿음. 가장 큰 믿음은 기다리는 거란다..."

나는 비밀을 알려주듯 눈을 얇게 뜨고 나지막하게 말했고, 아이들은 큰 비밀을 듣는 듯 귀 기울였으며,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아내는 그정도는 기본으로 알고 있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아빠~?" 네살 아들.
"응?"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래. 사실 나도 잘 몰라. ㅎㅎ"

머리를 갸웃거리는 아들을 앞세우고 잠자리 많이 날던 노고단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