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오랫만에 집안 유리알처럼 쓸고 닦고 목이말라 정수기에 컵을 갔다 댔다.
쪼르륵 투명한 글라스에 맑게 정수된 물이 따라진다.
한모금 마시고 나는 어둠이 짙게 깔린 베란다 창문을 열어본다.
별.별이 보인다.그리고 주마등 처럼 스쳐가는 고된 시집살이..
이미 지난 시집살이지만 자판을 톡톡 두둘겨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나의 고단 했던 시절을 잠시 회상 해 볼란다.
난 나없이 살수 없다는 내 남편의 끈질긴 구애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포항으로 이십여년전에 시집을 왔다
남편의 제대 보름만에 전격 결혼식을 올렸다.
1박 2일에 짧고 형식적인 신혼여행끝에 시집에 들어오니
날 기다리는것은 며느리만해도 25명인 대소가에 종갓집 종부라는 굴레가 기다리고 있엇다
농촌생할..
손많이 가는 밭농사 짓는 시댁 생활 .
일일히 불때서 모든것을 해결 해야 하는 악조건.
앞이 캄캄햇다.22살에 화려한 청춘을 뒤로 하고 시댁에서 사그라 들어야 하는 내 나이가 난 넘 억울햇다.
하지만 그땐 내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시부모님에 손윗 시누 한분에 시동생 셋..우리 부부 그당시에 가족 사항이다
우리 시아버님은 참으로 별난 분이시다.
주위에서 저런 양반은 조선 천지에도 없을거라고 할 정도로 우리 아버님은 참으로 별나셧다
말도 많으시고 365일중 360일을 술에취해 사시는 울 아버님 게다가 분답기는 얼마나 분다우신지<분답다=표준말로 매우 산만하다>아주 정신을 빼놓는 우리 아버님..
우리 시어머님..아주 냉혹한 분이셧다 며느리한테는 인정사정 안보는 우리 어머님 어린나이에 나는 어머니가 참 두렵고 무서웠다
남편부터 시동생들도 어머니한테 꼼짝마라 였을 정도 였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새벽 5시면 일어나서 밀리는 집안일 거들어야 하는 밭일 세탁기 한대 없는 대가족 빨래
장작불 못 부친다고 구박하는 어머니 그야말로 전쟁이였다
하루종일 이리뛰고 저리뛰고 저녁쯤 되면 소 중개인이셧던 아버님 술에 취해 어김없이 날 괴롭히는 아버님..그리고 평생을 그럼 영감 데리고 사셨다고 며느리 한테 한을 푸시는 어머니 난 그가운데 서서 아무 힘없이 감당 해야만햇다
오후되면 술의 취해 집에 오실 아버님 생각하면 가슴은 쿵쿵 뛰어오고
그나마 장막이 되어주는 시동생들 없으면 난 고스란히 아버님의 끝없는 술주정에 시달려야 햇다
어느날은 시동생들 없으면 난 아버님 오실 시간에 장독대 뒤에서 숨죽이고 숨어도 잇었다 아니면 뒷산에 올라가서 산꼭대기에서 시동생들 오기를 기다려만했다.
아이 태어나고 보름간에 달콤한 휴식은왜 그렇게 빨리 가든지..
젖 두번먹이면 동이 훤히 트는 여름밤이 왜그리 짧던지.
어머니의 완벽한 며느리 시집살인..참 대단하셨다.
일이 밀려 속옷 빨래 삶지않고 널었더니.빨래 만져 보시고 삶지않앗다고 호통 치시는 어머니..,<삶은 빨랜..빳빳함>
사사건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였다.
술주정 하는 아버님보다 며느리에게 늘 앙살떠는 어머니가 더 무서운 존재였다.
내가 당신 아들과 사는 이유 그 한가지 이유만으로
어머닌 일방적으로 휘둘렀고
나는 당신이 낳아준 아들과 사는죄로 고스란히 당하는 입장이였다.
어머닌 나를 마치 당신 아들 훔쳐간 도둑 취급을 했다.
어느덧 난 건강을 잃어갔고 마음에 병이 깊어만갓다.
그와중에 두째아이가 들어섰다.난 기뻣다 아이가 생겨 기쁜거 보다 솔직히 보름동안에 휴식이 기뻣던것 같다
아이 태어나고 3일 누워 있으니.부엌에서 우당탕 거리는 어머니 눈치가 보여.3일만에 알아서 기었다,점수좀따려고...청소도 하고..<ㅎㅎㅎㅎ.>
어머님 내가 참 미우셧나보다.
고생고생해서 키운 큰아들뺏어간 며느리가 곱진 않었는지
둘째 아이 낳고 20일쯤되었을까? 마당에 부록 깐다고 일거들라는 엄명에.몸도 제대로 추스리기전에 무거운 부록을 깔아야만했다
서너시간 무리하니 애낳은 산모.하늘이 노래트만..
옹기 종기 모여 사는 월성 이가 집성촌..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옆에 사시던 시할머니 지팡이 짚고 오셨다
손부 막무가내 손 잡아끌고 내방으로 끌고 가시는 시할머니.빽으로 난 잠시라도 누울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6개월을 하혈을 해야만 했다..
여자는 백일이 지나야 자궁이 아무는데 20여일만에 부록까는 일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술주정 하시는아버님도 그 한풀이를 하시는 어머니도 다 미웠다.
모시옷 뽀얗게 풀 입혀 다듬이돌에 두둘겨 빳빳하게 옷입혀 내보내면
술에취해 논길 지나 집에 오시다 논에 빠져 뽀얀 모시옷 흙물 들여 오시는 아버님
항상 며느리 방 차지 하시고 계시는 어머니..난 갈곳도 쉴곳도 없었다
어느날 비가 추적추적 왔다.참 반가운 비엿다 왜냐면 비오면 일이 줄어드니 쉴수있다는 기쁨에..
산후 휴유증으로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난 몸과 마음이 엉망인나..
비가 오는탓에 나의 도피처이자 휴식공간인 산 꼭대기에도 갈수가 없어.
따뜻한 부뚜막에 몸을 눕혔다..부두막이 비오는 날에 나의 유일한 휴식 공간이였다.
따시한 부뚜막에서의 까무룩 잠이 들었나보다.
남편이 부엌문을 열고 부두막에 젊디 젊은 그리고 슬픈눈동자의 아내를 내려다 보았다.
애들아빠..내모습보더니 효자인 애들아빠 그 무서운 어머니한테 폭팔햇다
늘 며느리방을 차지하고 계신 어머니한테..
"엄마!우리방 좀..조심좀 해줘요!저사람이 쉴데가 없잖아요!"
휙~어머니 내방 나가시고 이어 들여오는 어머니 통곡소리에 난 어머니를 달래들여만했다
생활이 아니고 생존..
그럭저럭 난 4년을 시댁에ㅡ 살았다
그런데 인간은 한계가 있드라구요..
늧은 여름 그날도 아버님의 시달림과 많은 집안일 마치고 마당 평상에 누워서 하늘을 보았다
별을보니 내고향 하늘에도 저별이 떠있겟지 생각하니.뺨으로 뜨겁고 서러운 눈물이 귀를타고 머리칼을 적시고 있었다
아.그때 난 인제 이렇게는 살수 없다는 결심이 서게되었다
그래 분가하자..인간이 한계에 부딫치니 두려울게 없다는걸 그때 깨달았다.
이튼날 난리가 났다 .
분가 선언에 당황한 어머니 택도 없다는 아버님.난 꺽여야했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제발 일은 많이해도 좋으니 아버님 주사 고쳐달라고 믿지도않은 신한테 매달려도봣다...
하루하루 힘겨운 생할.
그런데 참 기이한것은 우리 어머니셧다
전날엔 아버님 행동에 분개 하시는 모습과는 달리 아침엔 사이가 좋으시고..아버님한테 무슨 노하우가 있는건지..ㅎㅎㅎㅎ
우리 시부모님이 좋은점도 있으셨다.손주 사랑이 유별나셨다 아이둘 키워도 우리집엔 아이 울름소리가 별루 나질않았다
울기가 무섭게 업어주고 달래고..손주라면 당신의 네아들보다도 더 끔찍히 사랑 하셨다
난 유모에 불과할정도로..
아마 내자식한테 쏟은 정때문에 나도 속속들이 시부모님이 밉지는 않앗나보다.
아!우리 시동생들도 형수 고생하는거 알고 나를참 많이 이해 해주고 연탄불도 갈아주고 ..
어느날.추석이였다.
아버님 술취하셔서 며느리 한테 하는 광경을 우연히 대소가 어른들이 목격하게 되었다
그어른들 나 시집오기전에 내기를 하엿다네요..
"과연 모델?<이말은 순전히 어른들말임>같은 질부가 도외지 생활한 질부가,과연 석달을 살아낼까..내기를햇단다
하지만 난 4년을 버티고 있었다
구박하는걸 보신 어른들 회의끝에 몰려 오셔서.질부 살림내주라고 간청하시던 아재 분들
하지만 가장 어려울대 도움되는말은 분가하라는 그말보다
어느숙모가"질부야 극복을해라"그말이 가슴에 닿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난 극복을 못하고 살림을 나게되엇다.마침내.4년만에 해방이였다
결국 난 쓰러지고 애들아빠 등에 업혀 대기 해놓은 앰블런스로 가던중 정신이 들었다
"정신차린 나.."나내려줘요 이제 괜찮아요"
"민이 엄마 쇼좀해라..이기회에 분가하자 이 길뿐이없다"
남편에 등에 업혀서 울엇던 기억..흠...에이,눈물나..훌쩍!ㅎㅎㅎ
응급실서 영양제 한병맟고 집에오니 6개월된 둘째아들 눈은 울고 입은 웃고 와락 난 아이를 끌어 안은채 4년동안 참앗던 서러운 눈물을 토해냈다
그리고.
삼일을 울다 웃다 미친척 햇다
아니 아니 진자 뺑 돌아서 몸서리 쳐지는 터널같은 암흑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분가 하는날.집안 어른들의 축하속에 종 시동생들이 이삿짐을 옮겨줬다
기쁨은 잠시.
난 부모 버리고 나온 죄의식에 시달려만햇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이 둘 데리고 일주일에 한두번 갔다와야지 마음이 편햇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머니는 충족이 안되시는거 같앗다
그러던중 아랫동서가 들어왓다
고생끝에 본 동서라 그런지 한없이 이쁘고 사랑스러웠다 .
며느리 하나씩 볼때마다 어머님 조금조금 나아지셧다
그래도 종가집 종부의 스트레스는 여전햇다
굴레..나를죄어 오는 분가에 대한 강박관념..
하지만 시집살이는.갈수록 수월하단 옛말이 맟고 외며느리 불쌍하단 말도 맟드만.
막내 며느리 까지 보신 우리 어머니.
나이탓인지.차츰차츰 나를보는 눈이 부드러워 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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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여년 세월이 흘렀네요.
며칠전에 시댁에 용돈 드리러 갔엇어요..
시아버님은 언젠간 그러셨지."내가 며느리 넷중에 너한테 몹쓸짓 많이했다"
하지만 어머님은 지금까지 한마디도 내색 않던분이.그러시데요..
"내 별난거 와 모르겠노.저런 영감탱이 만나서 고생고생 살다가 내성격이 독해져서 안그랫나"하시더라구요
우리 아버님은 어머니그러니.
"아고..내같은 사람이 어딧노??나니까 민이 할매 델고 사는기라"ㅎㅎㅎ
또 싸우시는 우리의 노인네들"어휴 저 갈래요!!내말한마디에 갈까바 조용하시는 아버님.
미운정이 고운정보다 더 깊은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좀 지루 한 글이지만 마칠께요..
우리 아버님 84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소주 2빈 기본 이셔요
그리고 정이 있으셔서 알뜰히 밉지가 않습니다
순박하시고.
아!또있다 이세상에서 아버님이 제일 무서워 하시는게 몬줄 아세요?ㅎㅎㅎ
첫째!사돈과 큰며느리
둘째!경찰
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