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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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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네 스토리


BY 이화 2001-09-18

우리 앞집 이층에는 중학생 아들 쌍둥이를
둔 사십대 부부가 산다. 이름하여 쌍둥네-
고만고만한 아들 둘이 아침이면 엎어질 듯
대문을 달려나가는 소란이 우리집과 비슷해서
연년생인가 보다...했었는데 알고보니 쌍둥이였다.

쌍둥 어멈은 집 앞에 있는 부업 공장에 다닌다.
공장에서는 애완견 줄을 만든다고 하는데
바로 뒷집에 사는 덕분에 강아지 이름표,
강아지 방울, 강아지 머리핀...등등 몇가지를
얻어 우리 집 멍멍이들에게 소소한 도움이 되었었다.

문제는 두어달 전 일어났다.
작열하던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갈 즈음 어디서
와장창...세간살이 부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왜때려왜때려왜때려니죽고내죽자마......
그리고 엉엉 울어대는 아이들 소리도 들렸다.
저녁 먹던 밥숟갈을 던지고 나가서 보니
쌍둥네에서 벌어진 사단이었다.

쌍둥이들은 변성기에 접어든 목소리로 현관 밖에서
컥컥 울어대고 아내를 주먹으로 두들겨 패는
쌍둥 아범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이
그 광경을 볼새라 남편과 나는 우리 아이들을 안으로
들여 보내고 머뭇머뭇 일층으로 내려 갔다.

잠시 뒤 이런 일 한두번 겪어보는 게 아니라는 폼으로
반지하방에 사는 아줌마가 느릿느릿 허리를 휘두르며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 아줌마는 일명 살아있는 마이크,
동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어느 집 할 것 없이
소소한 사정들을 다 꿰고 있는 동네의 소식통이다.

말로 해야지 사람을 때리긴 왜 때려...
야, **아(반지하 아줌마 아들)!
경찰서에 전화해. 아이구, 쌍둥 아빠 때문에
이웃들 못 살겠네...이웃 부끄러운줄 좀 알아욧!!!

오분도 채 안되어 경찰이 왔다.
대문 밖에서 몇 번지야?...두런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응? 또 이 아저씨잖아? 이 아저씨 아주 상습범이네...
가정폭력이 얼마나 큰 죈줄 알아요? 이러다 이웃에서
고발 들어오면 이 동네 떠야 되요 아이구 나 참...

쌍둥 아범은 소주 냄새 팍팍 풍기면서 맨발로 두 경찰에
이끌려 사라졌다.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데 걸린
삼십여분 남짓한 시간이 내게는 꿈처럼 몽롱하게 느껴졌다.
추적 60분, 그것이 알고 싶다 에서 보던 내용들이
실제로 있었구나...그것도 바로 내 주변에....
그날 쌍둥 어멈은 코를 얻어맞아 코피를 빼기 위해
병원에 실려갔다.

쌍둥 아범은 직업도 없이 술만 마셔대는 사람이었다.
쌍둥이들 교육비도 낼 수가 없어서 중학교도 그만 두려고
했는데 학교측에서 무료로 해주겠다고 하여 아이들은
학교만 간신히 다니고 있었고, 쌍둥 어멈이 강아지 줄
만드는 공장에서 받는 40만원이 그 집의 수입 전부였다.

쌍둥 아범은 한번씩 집에 들어와 술을 마시고 아내와
세간살이를 들이부시고 경찰서에 붙잡혀 갔다 오면
한달이건 두달이건 또 가출을 한단다.

언젠가는 쌍둥이들이 지르는 비명에 역시 반지하
아줌마가 들어가 보니(이 아줌마 말고는 아무도 그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 대낮부터 소주 한병을 빈 속에 마신
쌍둥 아범이 아이들을 발가벗겨 의자에 묶어놓고
야구 방망이로 때리고 있었다 한다. 쌍둥 어멈은 일하러
가고 없는 사이에 쌍둥 아범이 와서 한 짓이었다.

그리고 우리집과 쌍둥네를 경계 짓는 담 벼락 사이에
쌍둥이 하나가 야구 방망이 숨기는 것도 본적이 있다.
쌍둥이들은 엄마가 없는 낮이면 많이 싸웠다. 싸우다가
어느 하나가 분에 받히면 괴성을 내지르면서 물건을 내던지고
어떤 때는 아버지가 한 것과 같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가
상대방을 때리기도 했다.폭력적 성향도 유전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쌍둥 아범은 또 행방불명이었다.
뜨거운 여름이 다 가도록 쌍둥네는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로 하여 평화로웠다.
중간에 쌍둥이들 친할머니가 어디선가 나타나 며느리를
기다린다고 몇시간을 계단에 앉아계셨지만 쌍둥 어멈은
쌍둥이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타나지 않았다.

그 할머니는 이웃 아줌마들을 볼 때 마다 중얼거리셨다.
우리 며느리가 문도 안 열어줘...시 에미가 왔는데...
그러면 이웃 아줌마들이 한마디씩 했다.
아들 인간 만드셔요 나라도 문 안 열어주겠네
며느리가 병신 됐어요 할머니 아들이 어떻게 하는지
알기나 하셔요?

그러면 할머니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계속 자기 말만
하셨다. 아이구 문도 안 열어줘 아이구 문도 안 열어줘...
쌍둥 어멈의 친정에서 쌀이야 야채야 죄다 도움을 받고
나머지 공과금은 수입의 전부인 40만원으로 충당을 하고,
이젠 이혼을 생각 중이라고 살아있는 마이크 아줌마가
소식통답게 나에게 전해준 쌍둥네 스토리였는데...

바로 이틀 전 일요일 아침, 좀 일찍 일어난 탓에
현관 밖에서 한껏 기지개를 켜는데 오마나?
쌍둥네 현관이 열리더니 쌍둥 아범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빼샥 마른 몸에 반바지를 입고 등산화를 신고 있다.
뒤이어 나오는 쌍둥 어멈은 작은 배낭을 메고 역시 반바지
차림으로 나를 보더니 어색하게 웃는다.

저 아저씨가 언제 온거야?
눈이 둥그레져서 보는 나의 궁금증을 아는지 쌍둥 어멈이
산에 갈라구요...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쌍둥 아범이 무슨 억하심정인지
쌍둥 어멈을 팔꿈치로 내지른다. 왜 그래!!!
이야기 하는 사람한테 왜 그래!!!

아내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는 꼴도 못보나 보다.
나 때문에 혹여 부부지간에 싸움 될까봐 얼른 들어와
버렸다. 그리고 엊저녁이었다. 오토바이 소리가 나서
내다보니 쌍둥네에 배달온 피자가 들어가고 있었다.
그 집에 음식이 배달되는 것은 내가 이사온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쌍둥 아범이 아직 있는 것인지 쌍둥 어멈은
현관 밖에 불을 켜고 오래도록 청소를 하였다.
쌍둥이들은 연 이틀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지켜보는 나에겐 부부 둘만 있는 고요함도 어쩐지
불안하기만 하다. 여자는 약하기만 한 것인가?
아니면 어머니는 정녕 강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