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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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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초여름밤의 스케치


BY 雪里 2003-06-21

더운 여름에 무슨 김치찌게냐며

김치를 썰어 넣고 있는 내게 어머님은 불만이 많으시다.

"돼지 갈비 넣어 푹 끓이면 오랫만이라 맛있을거예요."

 

식탁위에 죽 늘어 놓고 먹어야 입맛이 난다는 어머님과는 달리

내가 준비하는 식탁은 언제나 간단하다.

 

작은 남비에 옮겨 담아진 김치찌게를 가운데 두고

이쪽 저쪽으로도 역시 종류다른 김치가 놓여 있는 식탁에 앉으며

아들이 한마디 한다.

 

"우리 가족은 절대 싸스에 걸릴 염려는 없겠네요."

"그럼, 외국에선 김치 사재기도 한다지 않든? "

 

종강파티 한다고 안들어온 작은 아들과

가게 지키는 남편이 빠진 식탁에서,

넷이 들고 있는 수저는 연신 김치찌게 담긴 남비속만 들락거린다.

 

"맛있다,정말."

"그러게........"

"더워도 괜찮죠?"

 

"어유~!, 나도 잘먹었다."

식탁의자에서 일어나시며 아버님이 하시는 이 말씀은

늘 나를 기분좋게 한다.

 

평상시보다 이른 저녁인지라 모처럼 그이 식사를 싸들고 나오며

어른들께 아무말없이 나오는 내가 우습다.

밤낚시 간다고 말씀 드려도 가지 말라고 하시진 않을것을 말이다.

 

아침잠이 많은 며느리를 위해

새벽잠 없으신 어머님이 아침밥을 앉혀 놓으시는 일이 허다한데

또 내일아침 늦잠 잘 일을 만들고 있는 것 같은 죄스러움이

나를 천연스레 그냥 나오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두워지기전에 다 펴 놓을 수 있게 서둘러 가라며

모처럼 밤낚시 가는 마누라가 생기 있어 보이는지

싸온 밥을 먹으며 남편이 더 바쁘다.

 

"랜턴은? 케미는? 모기향도 넣어~!

지렁이만 가져가지말고 떡밥도 가져가서 짝밥을 달어~!..."

 

손님차에 실려서 마누라를 먼저 낚시터로 보내는것이

늘 익숙하면서도 유난스레 부산을 떠는 모습을 보니

다른때 같으면 여러번 움직였을 내가 이제사 움직이는게 

 그이는 신경이 쓰였었는가 보다.

 

반짝이는 두개의 케미라이트 불빛이

이렇다하며 집어낼것도 없이 복잡한 마음을 정리해 주는것 같았다.

초여름밤의 서늘한 밤바람이 가슴을 쓸어내려 주는가 싶더니

물속에서 깜박이던 작은 불빛이 설레임으로 훤히 올라선다.

 

빛을 끌고 잠수해 버리던 놈과 한참 실갱이를  벌여  꺼내보니 메기다.

황홀한 불빛을 보여주는건 역시 고운 자태의 반가운 토종붕어다.

 

어스름한 달빛속에서 늦게 도착한 남편이랑 나란히 앉아

아무말 하지 않고 물만 바라 보고 있다가

잡은 고기 전부 살림망 뒤집어 쏟아 넣고 돌아 오는밤,

 

가까우니 자주 오자는 제의를 웃음으로 답하며

살금살금 들어선 거실엔,

웃옷을 벗어던진 큰아들이  뒹굴다가 힐끗쳐다보곤

티비에다 시선 고정시킨채로 입으로만 인사한다.

 

"어디 갔다 이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