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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주문에 답례품을 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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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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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2


BY lina33 2003-06-09

얼떨떨하게 28살의 11월에 시집을 왔다.
저녁상을 받아 체면치례를 하고 힘들고 너무피곤한 몸이지만 새색시 폼은 잡아야하니 어쩌겠는가,..
얌전떨고 앉았있었다.
친척이래야 몇되지않는 사람들,..
10쯤 되었을까?
그때부터 시어머니의 친구분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고 10명이 좀 넘었던것 같다.
궁금하니까 축하겸 궁금증도 풀겸 오셨을것이다.
흔히 있는일이니까,..
저녁대접까지는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이 나지않는다. 그 후부터 다과를 비롯하여 온갖 먹거리 대접이며 시중을 시집온 첫날 저녁 새벽2~3시까지 혼자서 다해야했던 황당한일,..
젊어서 혼자된 시어머니는 술도 잘 드시고 춤도 좋아했던 모양이었다.
거기 오신 모든 아주머니들은 새벽 2시가 넘어도 녹음기를 틀어놓고 지루박? 뭐 차차차? 등등 이런것들을 거실에서 추고계셨다.
엄격하고 보수적인 친정집에서는 상상할수없는 광경들이었다.
우리집엔 그 다음주부터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1개월 반을 10여명씩 시어머니는 대동하셨고 나는 음식을 만들고 대접을 해야했다.
이런 기억들로 나는 질려버렸고 내 아들과 딸은 백일이고 돐이고 잔칫상을 차리지않았다.
그때의 주말마다 이어지는 손님초대의 비용은 내가 시집올때 절약했던 조금의 액수와 친정에서 예비비로 주셨던 모든 금액을 다 털어야했다.
당시 참다못해 시어머니께 손님 초대비용을 좀 도와달라고 했던기억이 있다.
시어머니말씀"나는 단돈 5만원으로 50만원어치의 음식을 흉내내어 차릴수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5만원을 주셨던 기억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런 일들이 하나 둘 쌓이면서 나는 시어머니와 거리가 멀어져가고있음을 느끼고 있었고 마음을 닫기 시작했다.
홀시어머니의 외아들과 혼인하지말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되새길수있는 일도 있었다.
밤 12시가 될때까지 우리방문앞에 기대어 거실의 텔레비젼을 보시던일,.. 새벽 5시만 되면 부엌의 싱크대문과 찬장문을 열었다 닫았다하면서 덩컹거리시던일,..
이런일들은 상상할수없었던 일들이었고 외면적이고 내가 보아왔던 시어머니, 다른사람들이 알고있고 말하던 시어머니의 성향과는 너무 이질적이었다.
항상 민주적이고, 자율성을 최대한 주고, 자유롭게 살게하는게 당ㅇ신의 기본자세라고 말씀하시던 분의 행동은 다만 말씀에 불과했다.
남편도 시어머님과 오랫동안 같이 생활하지않았기에 서먹서먹한 마음이 있었던지 일체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나 또한 어른들의 말씀을 공경하고 따라야한다고 배워왔고 알고있었기에 참고 스스로 다둑거리고 살았다.

겨울이 시작되니 김장철이 되었다.
어느날 시장 야채아저씨께서 배추와 무우를 한더미 앞 마당에다 쌓아놓으셨다.
시어머니께서 배달시키신 것이었다.
거기에다 살아서 움직이는 꽃게 2상자까지,..
비록 어린시절 시골에서 자랐지만 대학까지 가방만 들고 다녔고 그후로는 직장생활을 했기에 한번도 김장을 해보지못했었다.
며느리니까 당연히 김장을 해서 여태까지 얻어드셨던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주고 우리도 먹어야한다면서 그 많은 배추를 사오셨던것이다.
당황스러웠지만 해야된다고 하니 어쩌겠는가/
친정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놓고 시키는대로 차례대로 일을 처리해나갔다.
당시 친정어머니는 아주 침착한 목소리로 "내가 걱정했던 일들이 벌어지는구나, 네 몫이니 어쩌겠니" 이렇게 하시면서 한숨을 쉬셨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나는 수십포기의 김장을 했다. 하지만 꽃게는 도저히 무서워서 만질수가 없었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잘 알고계시는 친척분 아주머니를 대신 보내시어 그분께서 꽃게양념장을 담아주셨다.

김장을 하면서 또 한번의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김장을 담을 항아리때문이었다.
어머니께 김장 담을 항아리를 사달라고 부탁드렸다. 아마도 시어머니는 그런 말이 못 마땅하셨던가 보다.
알아서 하면 될것인데 그것까지 구해달라고하는것이,..
뒷곁에가면 빨간 고무통이 있으니 거기다 담으면 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일터로 가셨다.
그 고무통은 내가 알고있던 통이었다.
친정에서는 김장할때는 커다란 옹기 항아리를 아주 정갈하게 잘 씻고 닦아서 그곳에 김장을 했었다.
나도 그래야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하지만 그런 항아리는 아니더라도 빨간 고무통엔 물빠지는 구명이 다섯개나 있는 그런 통이었다.
그런 고무통에 겨울내 먹을 김치를 저정한다는것은 ,.. 아무리 비닐을 씌워 그 속에 담는다고 해도,.. 좀 그랬다.
말이 통하지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상식이란 선이 어디까지인가 나는 화가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나는 주머니돈을 긁어 항아리를 한개 만련하고 일부는 그곳에다 담고 남들 주어야하는 분량은 잠깐이니 빨간 고무통을 이용하였다.
이것은 지금도 내가 이해할수없는 부분중의 한가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