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전화기가 두 대, 아니 세대 있다.
유선전화기 두 대에 꼽사리 낀 무선 전화기 한 대.
말이 무선이지 엎어지면 코닿을 현관문께만 가도 찌직거려
전화기를 귀에 밀쳐대고 맴맴 고추잠자리가 되기 일쑤다.
조신하게 집에 있는턱에
전화오는 곳이 한정돼있어 우리집 전화기는 그리 바쁘지 않다.
따르릉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이런 고~얀~
서로 무심함에 나무람도 잠시
어제 만나고 오늘 다시 만난 듯, 따발총이 따로 없다.
참 친구는 좋은 거다.
맘편히 이러구, 저러구를 나눌수 있으니
전화기를 내려놓자 마자 벨이 또 울린다.
아이고 넌 어디다 그리 전화를 오래 하냐
한 삼십분 더 됐나보다.
어머니 넘 심하셨다.
그렇게 부풀리시다니...
그저 안부가 궁금해 걸으셨단다.
전화 한통없다고 서운해 하신다.
어머니 잠깐 끊으세요. 내가 바로 안부전화 드릴께요.
띠극, 띠극... 여보세요...너도, 참....
전화줄을 통해 들려오는 어머니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죄송한 마음을 조금 덜어본다.
군대가 있는 아들 녀석은 1541로 전화를 한다.
휴가나와 들어갈 때마다 전화카드를 사갖고 가는데
그건 용도가 다른가 보다
항상 1541로 건다
에-ㅁ-마
등치는 산 만하고 종아리 털도 북실북실
아빠보다도 더 시커멓게 난 녀석이
전화통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는
영낙없는 일곱 살 내아들이다.
전환 지가 걸었고, 요금은 내가 내는데
지금은 바쁘니 다음에 다시 한단다.
몇 마디나 나눴다고
그렇게 바쁘면 누가 하랬나.
군대 생활 아는 척 좀하려면
군대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씀 하시는 거란다.
뒤이어 군대간 아들 녀석 친구도
1541로 한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인사는 잠깐이고
이놈, 저놈, 그 여러놈들 안부를 다 물어댄다.
녀석은 꼭 핸드폰으로
1541을 건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으-응, 어머니좀 바꿔 줄래요
제가 엄만데요.
아-사모님, 좋은 투자정보가 있어서
내 전화 목소리가 어떻길래 매번..
사모님이 많고 흔하기도 하다.
얼결에 나온 호칭이 사모님이니
괜시리 씁쓸하다.
그래도 나에게 전화를 가장 많이 걸어주는 사람은
남편이다.
아침에 출근하고 구청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한 이 삼십분인데
잘 도착했다고 전화하고,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전화하고,
지금 떠난다고 전화한다.
그로 인해 바쁠일 없는 우리집 전화기가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된다.
남편은 저녁에 속해있는 합창단에 연습을 하러간다.
한 밤10시 정도면 연습이 끝나
항상 그때 쯤 되면 울려질 전화기를 먼저 바라보고 있게된다.
이때 전화하는 남편은
나 지금 끝났어. 지금 교대역이야
하고 내 대답도 듣기 전에 얼른 끊어버린다.
전철역으로 마중나오라는 얘기다.
싫다 좋다 대답할 눈꼽만큼의 여지를 안준다.
귀찮은 척, 싫은 척, 못이기는 척
난 전철역으로 나간다.
조금 늦게 나가 미쳐 전철역에 도착하지 못해
길 저쯤에서 남편의 모습이 보이면
남편은 어느새 숨길수 없이 나와 버린 배를 감추려 애를 쓰며
길가 가로수 뒤로 숨는다.
모른척 지날라치면
어린아이와 같은 몸짓으로
나 여기있어 한다.
나 교대역이야
방금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30분 후에 난 전철역에 가 있을거다.
전철이 도착하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계단위 숨을 곳도 없는 그곳에서
윗 머리꼭지만 봐도 담박 탄로가 나는데도
이리 저리 몸을 숨기며 나올
남편을 마중나갈 거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였음에 감사하며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짧은 데이트를 즐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