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때 우리집은 정거장앞에 있는 매점을 겸한 집이었다.
(일학년 일학기때까지만 관사집에 살았던 것 같음)
다른 집(가게)들과는 동떨어져있는 나홀로주택겸 가게였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면 행길 건너
목노주점식 식당인 선영이네 집에 들러 함께 학교를 가곤 했는데
선영이네 형제들은 뒷쪽으로 난 작은문으로 집안 출입을 했다.
내가 학교갈 채비를 하고 선영이네 뒷문으로 들어가면
그시간에 지금은 없어진 동양라디오의 "아차부인 재치부인"이란 일일연속극을 하고 있었다.
"아차부인 안녕하세요? 네에 재치부인..." 이렇게 대화가 들어간 주제가가 나오고 연속극이 시작되고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선영인 얼마나 잠끝이 질긴지
"선영아 일어나"하고 소리를 지르고 김밥말듯 이리굴리고 저리굴려도 도무지 일어나질 못하니 오늘도 여지없이 지각이구나.."
주번선생님께 매맞을 걱정이 앞서곤했다.
한참을 목이 터져라 흔들어 깨우면 그때서야 꿀먹은 벙어리처럼
두시럭 두시럭 꾸물꾸물거리고...
어느덧 아차부인 재치부인 연속극은 다 끝나가고...
우리들은 헐레벌떡 학교로 뛰어가면 어느듯 교문을 지키던 주번들은 움도 싻도 안보였다.
주번선생님께 들킨 우리들은 두손을 내밀고 몇대씩 맞고 눈물을 찔끔거리고
교실 뒷문을 열고 깨끔발로 살금살금 들어가려면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야 니들이 대학생이냐?"
그러고도 담임선생님한테 다시 지청구를 들어야했다.
학교다닐때 선영이는 후딱하면 다치기도 잘해 피나고 꿰메고하길 다반사였다.
초등학교동창모임에 나이이야기가 나왔을때 선영이가 말했다.
자긴 55년 10월생인데 큰오빠가 일찍 학교를 넣어서 학교다닐때 어리버리했던것 같았다고...
오뉴월 하룻빛이 다르다고 54년생들 틈에 끼어 이른생일일 나도 따라가기 힘들었는데
나보다도 7개월이 늦은 선영인 말할 나위 있었으랴?
다 자라면 밥그릇수가 별거 아닌데도 어릴때 그게 그런가 아닌가보다.
모임에서 만나면 선영인 나를 보면 새하얗게 눈을 흘긴다.
"옥아 너와난 이렇게 생뚱맞게 지내면 안되는 사인데...
우리 엄마가 널 얼마나 귀여워해주셨니?
그리고 어릴땐 한가족같이 지냈고... 방송국출연도 함께하고..."
머리에 얌전하게 쪽을 찌신 천상 여자이신
선영이 어머니는 내가 선영이 집에 가면
"니가 금이냐? 옥이냐?" 하시면서 어린나이에 망모를 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안처러워 하셨다.
나도 맘속으론 그게 아닌데 하면서도
생활차이가 많이나는 친구와 가까이 지낸다는게
편편치않아 옛정은 추억속에 묻어두기만 한다.
사는게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