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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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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복숭아와 김규호...


BY [리 본] 2003-06-03


초등학교 친구 김규호라고 있었다.
금촌에서 이사를 왔다고 
우리는 "금촌집"이라고 호칭했고 
할머니는 규호네 엄마를 "금촌집댁네"라고 택호를 부르셨다. 
규호넨 형제가 무척 많았고 
이사와 한동안은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나의 할머니는 직업적으로 사채를 굴리시는 분은 아니였지만
인근에서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할머니의 돈을 빌어 쓰는 형편이라 할머니의 힘은 대단했다. 
대충 타향에서 흘러 들어온 없이 사는 사람들이 
우리집 가사일을 많이 도와 주었는데
그 댓가로 할머니는 쌀을 팔아 주시고 명절에는 떡을 뽑아주셨다.
규호네 엄마도 우리집과 내왕이 잣았는데 
돈을 좀 돌려 쓸자면 
여자의 손길이 필요한 우리집 일을 도와 주시는건 
어쩔수 없는 일이였을 것이다. 
우리 할머니의 말이라면 팥이 콩이라해도 믿으셨던 분이다.
규호아버지는 선로반에 다니셨는데 습습하게 좋으신 분이였다. 
약주를 좋아하셔서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시며 퇴근하는 모습을 종종 뵈었다. 
그런중에도 규호엄마가 바지런하셔서 
자식 치닥거리하시느라 잠시도 쉬시지 않으셨다. 
우리가 고학년 즈음엔 신촌시장으로 야채를 내다 파시는 일을 하셨다.
 
초등학교 일학년 입학해서 그해 초여름에 
규호에 마당에다 멍석깔아 놓고 둘이 나란히 엎드려서 숙제를 했다. 
숙제하다 심심하면 복숭아 나무에 기어 올라가기도 하고 
돌멩이 던져 시큼털털한 풋복숭아 하나씩 따먹다가
익지 않은 복숭아 따먹으면 토사곽란 일어난다고 
어른들한테 혼나기도 하면서도 괜히 따서 먹지도 못하고 씹어 버렸다.
내가 억지를 부려도 은근한 미소로 소리없이 웃기만 하던 규호!
나보다 한살 많아 너그러움이 있었던겔까? 
조용하고 순한 규호가 참 좋았다. 

우리가 관사를 뜨고나서 가깝게 지낼 기회는 다시 없었지만 
같은반 혹은 다른반이였어도 
아이들 틈에서 있는듯 없는듯 조용하게 6년을 함께한 공부한 김규호...
오빠같이 너그러운 규호가 괜히 좋았다.

마당에다 멍석깔고 
풋복숭아 따먹으며 
숙제하던 아이들은 몇명이나 될까? 

풋복숭아와 김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