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말고 손으로 눈을 몇번 문질렀다.
조금 밝아 질것 같았는데 세수를 시원찮게 했나?
다시 한번 들고 가던 가방을 팔에 걸치고
두손을 올려 양쪽 눈을 한꺼번에 오랫동안 비벼 보았다.
그리곤 멀리 시선을 주며 비온뒤의 맑은 하늘을 올려 보았다.
햇살이 눈을 그냥 통과해서는 머리안의 골속까지 파고 드는지
"우지끈~"하며 두통을 일으키더니
이내 무거워진 머리를 아래로 숙이게 만들고 만다.
한참을 그자리에 서서
양 미간을 눌렀다가 눈두덩을 세게 눌렀다가.....
오래전에 한쪽눈을 사고로 다쳐 시력을 잃은뒤로
작은 불편은 감수해가며 그런대로 조심조심 잘 살아왔었는데,
갑자기 침침하게 보이는 이유도 이유이거니와
나도 모르는새 한켠 가슴이 울컥 하고 올라오는가 싶더니
가뜩이나 침침한 앞이 고이는 눈물로 아예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새롭게 단장한 넓은 병원에서
동공 넓히는 약을 투여 해놓고는
한참을 들여다 보며 내 눈알을 괴롭히던 안과 의사는
시력 잃은 눈에 심한 백내장이 왔지만 어쩔 수 없고
다른쪽 눈은 큰 이상이 없는것 같다는 결과를 말해 주었다.
안경을 착용하면 도움이 될거라 한다.
다행이었다.
별 이상이 없다니 말이다.
아무것도 못할것이다.
내게 남아 있는 이 한쪽눈 마저 시력이 약해 진다면
내가 이렇게 재미있어 하는 먹물놀이도 못 할것이고
가끔씩 앉아서 즐기는 모니터 앞에도 못 앉을 것이며
글씨는 더구나 못 읽을 판이 되어 버리는 것만 같은 두려움에
나는 이미 얼어 있었다.
그러고는 또 핑도는 눈물이 부끄러워
헛기침 두어번 하며 감추고는 안경가게로 향했다.
난시가 심하다며 골라주는 렌즈를 통해 보이는 세상은
좀전까지와는 달랐다.
마음까지 밝아지고 있었다.
햇볕때문에 눈이 부실거라며 색깔을 넣으면 편하단다.
언젠가, 색이 있는 안경은 썬그라스뿐인줄 알고 말했다가
친구에게 엄청 촌스러운 아줌마가 되었었는데
그 멋쟁이들이 쓰는 색안경을 내게 쓰라 했다.
돋보기의 렌즈까지 골라서 쓰고 신문을 펴보니
글씨가 그렇게 선병하게 보일 수 가 없다.
삼일후에 찾으러 오란다.
한꺼번에 두가지의 안경을 맞추고 집으로 오는 내내
삼일후부턴 맑게 보여질 세상의 기대감이 반,
퍼런 배춧잎을 내가 너무 많이 소비하는것 같은 염려가 반.
애들이랑 남편을 위해 쓰는건 아무렇지 않으면서도
나를 위해 쓰는건 왜 그리 아까운지.
주착스럽게도 머리속에서 배춧잎의 갯수가 자꾸 헤아려진다.
그래도, 시간아 빨리 가라.
이왕 저질러진일,
하루라도 빨리 밝고 편하게 한번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