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나이들어 깊이 패인 주름진 친정 아버지의 얼굴을 그리며
아름답던 아버지의젊은날을 추억해본다.
빈 지게를 지고 산에 가신지 한나절이 지나면 저만치 작은 산이
춤을 추며 걸어오곤했다.그 산의 가을은 개암나무가 주렁주렁열린 개암나무가지가 있었고 봄에는 연분홍빛 진달래가 하늘하늘 수를 놓으며
따라오고 있었다.가끔은 꼬리가 잘린 도마뱀이 툭 하고 떨어지기도
했다.서울에서 작은 아버지라도 다녀가시는 날에는 마늘이며 깨, 찹쌀
등을 싸서 십리나 족히되는 버스정류장까지들어다 주시며,그 힘겨움을
표내지 않던 아빠.난 지금도 그 늙은 노부를 아빠라 부르는 것이
좋다.그 먼길을 형한테 같이 들자고 말한마디 없이 빈손으로만
다녔었다고 지금도 서운해 하시는 엄마.내어릴적 연분홍빛 마술이나
그 한없는 베풀음은 아빠의 마음의 강물에 살고 있다.
아빠는 그때 그강에 흐르던 추억들을 가끔은 기억하며 꺼내보실까?
안양시 박달동.
가끔 친정에 들르면 환갑이 넘은 아빠가 아파트 건축현장으로 작업복과 연장이든 큼지막한 가방을 들고 새벽을 나선다.
그리고 삶에 찌든 모습으로 돌아오신다.가끔은 한잔술에 취해 늦도록
팔지못한 상하기 직전의 생선이며 과일을 떨이해들어오신다.
엄마의 잔소리가 뒤를 잊지만.
어디에도 산은 없다. 진달래도 개암나무도 도마뱀도 없다.30대 중반의 내가 있고,이제는 삶의 무게에
지친듯한 낯익은 남자가 있다. 그러나 난 안다.
마음에 흐르는 그 강의 물빛은 다르지만,아빠의 마음엔 아직도 그소박한 그예전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 낡고 허수룩한 가방이 아빠의 또 하나의 산이라는 것을.
이제는 작은산이 아닌 큰 산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