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봄에 수인선 협괘열차가 곧 없어지리라는 뉴우스를 듣고 서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기차에대한 향수가 많은 나는 협괘열차가 없어지기 전에 꼭 타야겠다고 다짐하고
언니에게 뜻을 말하니 언니도 쾌히 승락하셨다.
자매가 의기투합...
오월의 어느하순경 아카시아꽃에 조락의 물이들 무렵...
언니와 난 일정을 세우고 협괘열차의 출발역인 송도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사물을 인식할 무렵부터 난 기차역에서 살다시피 했었다.
아버지의 금테나는 모자가 멋있었고
프랫홈에서 당당하게 서 계시다가
기차가 출발할 때 둥그런 원같은 것을 운전하는 사람에게 숙달된 솜씨로 날리셨다.
"할머니께서도 어린 내게 하신 말씀이 "얘야 니애비가 그걸 주어야 기차가 떠날수 있단다. 그걸 안주면 기차는 가지 못한단다"
그래서 난 아버지의 존재가 자랑스러웠고
가끔 정거장에 나가면 역무원 아저씨들이 안아주고 뽀뽀하고
"니가 금이냐 옥이냐?"하시면서 서로들 앞다투어 안아 주시고
서울구경을 시켜 주신다며 번쩍 치켜 올려 무동을 태워 주시고
까불어 주셨다.
그런 행복한 기억이 많은 정거장은 내겐 아련한 그리움의 장소였다
송도역에서 만난 두자매는 기차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역내를 한번 돌아보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심심해서 아이스크림도 사먹으면서 협괘열차를 타고 여행할 가벼운 흥분에 들떠 있었다.
그날 내가 잡은 여행코오스는
수원에 도착하면 정조의 위업이 서려있는 수원성에 올라가보고
평택으로 가서 유명하다는 XXX냉면집에서 냉면을 먹는것이었다.
시간에 점점 지나 열차가 뜰무렵이 되니 어디선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왔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데이트족들도 가끔 눈에 띠었고
협괘열차를 이용해서 생업에 종사하시는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이 었다.
소래에서 생선을 떼어다가 수원쪽에다 팔고
그쪽에서 야채 나부랑이를 떼어다가
인천쪽에다 파시는 그런분들이 대부분이였다.
한쪽에는 또아리로 쓸 수건을 한쪽엔 고무다라이를 들고
기차가 오니 우루루 몰려가셔서 자리를 냉큼 잡으시더니 꾸벅 꾸벅 졸고 계셨다.
친정이나 시댁에 가는듯한 젊은 아기엄마도 있었고
소래협괘열차가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자매처럼 온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아주 조그만 꼬마열차..
장난감같은 귀연열차..
전차보단 조금 컸지만(참고로 전차는 한량, 협괘열차는 두량인가 세량인가)
그안의 면적은 전차와 같은 수준이였다.
이름도 모를 많은 간이역들을 지나 한시간 이십분을 소요해서 마침내 수원역에 도착
......................................................
덧글:수원성 올라간 이야기는 내일 이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