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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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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머리와 몽둥이찜질...


BY [리 본] 2003-06-01

지금도 초등학교 친구들은 나를 떠올리라치면 
머리 긴 아이로 기억하고 있다. 

할머니는 이상하게도 내머리에 집착을 가지고 계셨다.
주위 사람들이 머리를 깍아주실 권유해도
성질을 버럭 내시고는 절대로 용납하시지 않으셨다.
머리와 나를 동일시 하시는 것 같았다.
유난히 숱도 많은 내 머리를 간수해 주시기엔 할머니는 너무 많이 늙으신 연세였다.

관사시절에는 아랫집 사는 인숙이언니(큰오빠 또래인데 인물이 없고 얼굴이 얽었다)가 
머리손질은 잘해주고  말(우리 동네에선 마실간다는 것을 말 다닌다고 했다)갈때면 앞장세워 잘 데리고 다녔다.
우리할머니 말씀이 "그 간나 인물은 없어도 머리 하나는 잘 땋는다고.. 
사람은 누구에게나 한가지 재간은 다 타고 나는 법이라고.." 칭찬인지 흉인지 모를 말씀을 하시곤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긴머리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머리를 매일 땋아 주시는 것도 아니고 
그때만해도 아이들을 물고 빨고 하는 시절이 아니라 
대충 며칠에 한번씩 머리 손질을 하면 족하였다.
할머니가 머리를 땋아 주실라치면 
햇살 바른 마루 쪽마루에서 물을 한그릇 떠다 놓고 
얼레빗과 참빗을 번갈아 사용하여 앞가름마 타고
양쪽에 종종머리를 넣어서 한갈래로 치렁치렁... 

할머니가 빗겨주는 머리 스타일은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조선시대에 튀어나온 계집아이 같았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긴머리의 간수가 용이하지 않아 
심지어는 머리에 이가 꼬이기 시작했다.
디디티를 뿌리고 언니가 집에 내려오면 잡아주고 
그러나 워낙 긴머리라 이의 퇴치는 그리 용이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작은 오빠가 나를 조용히 이끌어
손을 잡고 따라간 곳이 동네 미장원이었다.
미장원언니에게 무어라 말하더니
무정하게 가위로 중단발로 썩뚝 자르더니 파마를 말기 시작...
한편으론 두려웠지만 
그래도 새롭게 변할 내모습에 설레고 좋기만 했다.
파마가 다 끝나고 난 후에 내모습은 백설공주가 부럽지 않았다.
라면처럼 꼬불꼬불한게(라면이 나오기 이전이었지만) 
한편으로 집에 들어갈 걱정이 태산 같았다.
오후의 시간을 대충 거리에서 때우고 나니 
라면처럼 꼬불꼬불하던 머리는 완전히 미친년 치맛자락처럼 퍼져서 
사자의 갈기머리 형상이 되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파마머리 간수를 잘 못해 늘 생머리인 상태로 지내는데 
10살도 안된 어린게 그 머리를 어찌 감당 할 수 있었수 있었으리오? 
일락서산에 해가 뉘엿뉘엿짐에 따라 
작은오빠의 손을 잡고 집에 살금살금 들어 오는 순간,
부엌에서 일하시는 할머니 눈에 띄여
작은 오빠는 부지부식간에 부지깽이로 몽둥이세례를 받고
난 삼십육계 줄행랑..
밤하늘 별을 세며 굴뚝을 부여잡고 목놓아 울었다.

"사자머리 라면머리도 좋지만 그래도 매맞는 건 싫어...
머리을 짜르는 건 할머니에 대한 배신이야 배신..."
사자머리와 몽둥이찜질...

그날 아마 나는 넙치가 되도록 호랑이 할머니에게 맞고 또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