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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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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지배자


BY 마음자리 2003-06-01

식구들 중에 맨 먼저 다락방을 장악한 사람은 작은형이었다.

물론 다락방만 장악한 것은 아니었다. 서랍도 농도 경대도 찬장도 창고도 모두 작은형이 장악해버렸다.

작은형은 그런 공간 속의 모든 사물들을 탐욕스럽게 기억이란 창고 속에 채워나갔다. 사물들은 형의 머리 속에서 다시 분류되고 정리되어 일목요연하게 목록화 되어졌다. 가히 하늘의 은총이랄 수밖에 없는 천부적인 기억력이었다.

사물들도 아무런 불만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잊혀져 있다가 존재의 부활을 맛보는 맛에 자진하여 장악되고 지배되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혹 식구 중의 누군가가 눈에 안 뜨이는 어떤 물건이라도 찾을라치면 우리 식구 모두의 눈은 자연히 작은형에게로 돌아갔고, 작은형은 그런 경우 우리 식구들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었다.

잠시 총기어린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빙긋 웃으면 그 물건은 우리 집 안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었으며, 어딘가를 뒤지고 난 형의 손에는 꼭 그 물건이 쥐어져 있었다. 형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 그 물건은 이미 우리 집 물건이 아니란 뜻이었다.

공간에 대한 완전한 지배였으며 반발 없는 장악이었다.

두 번 째로 공간 장악에 나선 사람은 작은누나였다.

여고생이었던 누나가 감행한 시도는 사실 공간 장악이라기 보다는 공간 확보란 말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수도산 밑, 방 2칸 전세 집.
작은방은 아버지와 큰형의 공간이었고, 큰방은 서울간 큰누나를 뺀 어머니 작은누나 작은형 나 네 식구의 공간이었다.

가세 급전 직하 후, 시련의 사춘기를 보내고 이제 성년 진입을 목전에 둔 여고 2학년 작은누나. 너무나도 간절하게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했었나보다.

며칠동안 어머니를 열심히 졸라대더니, 어느 날...
큰방 벽에 붙어있던 농이 방의 2/3 정도 위치로 당겨져 있었다.
뭔가 열심히 작업을 하던 누나가 나를 그 공간으로 초대했다.

농과 벽 틈 사이로 빠져 농 뒤쪽으로 가보니 그 곳에는 누나가 확보해놓은 소담한 공간이 있었다. 반 접은 담요 한 장과 벽 모퉁이에 놓인 어머니의 재봉틀 그리고 소반 위에 올려진 책 몇 권...

누나를 쳐다보니 처음 확보한 공간에 대한 자부심과 행복함이 얼굴 가득 피어있었다.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누부야 방이가?"
"그래~"
"야~ 좋다~ 나도 와도 되나?"
"그래~ 그대신 노크해서 먼저 내 허락 맡아야 된다~"
"알았다. 누부야~ 헤헤"

그 공간은 좁고 약간 어두웠지만 그 공간을 보는 누나의 눈에는 꿈이 서려있었다. 농 뒤쪽의 잊혀지고 어두운 공간을 누나는 소망이란 이름으로 창조해냈고, 그 공간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기꺼이 누나에게 장악되었다.

자기만의 공간 확보에 맛을 들인 누나는 좀 더 넓은 공간에 대한 탐욕으로 불타올랐고, 그 탐욕자의 후각에 다락방이 걸려들었다.

잊혀진 공간. 어둠의 공간. 쥐들의 보금자리. 곰팡이 냄새 배인 공간. 소용가치를 다한 물건들의 고려장.
바로 다락방.

어머니와 누나의 이해타산이 드물게도 쉽게 서로 맞아떨어졌다.
내 힘 안 들이고도 다락이 정리되고 쥐들도 추방되고...어머니의 계산이었고,
힘이 문제랴~ 나만의 더 넓은 공간만 확보된다면...누나의 계산이었다.

농 뒤쪽 공간은 즉시 폐쇄되었고, 다락으로 올라간 누나는 며칠동안 밥 때를 제외하고는 다락에서 살았다. 며칠 후...

"익아~ 올라 와봐라. 누부야 방 구경 시키주께~"
나를 젤 사랑한 누나인 만큼 첫 초대의 영광을 나에게 베풀었다.

벌컥 다락방 문을 열고 후다닥 다락방 계단을 오르다가 나는 입을 쩍~ 벌린 채 멈추어 섰다.

"우와~~~!!!"

꿈의 궁전을 보지는 못했지만 누나의 다락방과 같았으리라...
말끔히 정리된 다락방 한 켠에 멋진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는 예쁜 베개 하나, 그 너머 책꽂이가 있었고 그 책꽂이에는 누나가 좋아하는 소설책과 옷 디자인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었다.

츠르르륵~

한 켠에 몰려있던 커텐이 펼쳐지며 그 침대를 감쌌다.
침대 가까이 재봉틀 하나. 작은 전구 한 개 침대 위에 은은한 빛 뿌리며 매달려 있었다.

"누부야~ 침대를 우에 만들었노?"

설명인즉슨, 옷가지를 넣어두는 대나무함 네 개에다가 신문을 가득 채우고 가지런히 놓아서 밑 틀을 만들고, 그 위를 편편히 한 뒤 담요 덮고 침대커버 씌우고...ㅎㅎ 작은누나의 기발한 착상.

"누부야. 누버봐도 되나?"
"그래~ ㅎㅎ 오늘 한번만~"

냉큼 커텐을 한쪽으로 밀치고 침대 위에 누웠다. 폭신한 감촉...
그대로 오래 잠들고 싶었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마술인 거야. 누나가 부린 마술~

음습하게 죽어있던 다락이 누나의 손길이 닿고 난 뒤 화려한 꿈의 궁전으로 부활해 있었다. 살아 있었으며 희망과 꿈을 간직한 공간이 되어 누나의 영광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었다.

작은형과는 다른 방식의 공간에 대한 완전한 지배였으며 반발 없는 장악이었다.
소프트웨어적인 장악과 하드웨어적인 장악의 차이랄까...?

세 번째의 시도는 현재 진행 중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타임머신적 지배라고 해야할까...?

기억들이 묻힌 다락방을 몰래 들락거리며 은밀하게 하나씩 다락방에 숨겨진 보물들을 훔쳐오는 것이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기억들을 꺼내 잘 닦다보면 어느새 그 기억들은 빛을 발하며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환한 현실의 빛으로 탈바꿈하고 마는 추억여행이란 이름의 도둑질.

그 은밀한 도둑질이 끝이 나는 날, 텅 빈 공간 속에서 다락방은 투명한 빛으로 다가오는 자유를 만나지 않을까...기대하면서...
세 번째 시도는 나에 의해 현재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