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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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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에 깔려 죽을 뻔한 이야기


BY 꽃벼루 2000-12-28

아마도 오늘 고향엔 눈이 내리지 않을까?
하루 종일 흐렸던 하늘에
왠지 가슴에서 눈이 내린다.
예전에는 눈이 많이도 왔었는데...
세상이 메마른 것처럼 눈도 메말랐을까?
이제는 눈마저도 풍요롭지 않아 우리 아이들은 눈사람다운 눈사람을 만들어 본 기억이 없다.
도시라서..
더구나 눈보기가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도시에 사는 까닭이다.

일곱살쯤이던가.
함박눈이 펑펑(눈 내리는 소리가 이렇게 들릴정도로) 내리는 날
이웃에 사는 언니와 오빠(한살차이)와 언덕배기에서 눈사람을 만들기로 했다.
무릎팍을 넘어선 풍부한 눈을 세 꼬마가 열심히 굴려서 키만큼 큰 눈덩이를 만들었다.
몸통을 완성해서 적당한 곳에 세워놓고 머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욕심이 지나쳐서 세 꼬마의 힘으로는 도저히 머리를 몸통위로 올릴수 없는 것이었다.

누구의 생각이었나?
옆에 있던 움푹한 구덩이에다 몸통을 옮기고 머리를 올리자는 의견이 나왔다.
가능성이 있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눈사람의 몸통은 생각만큼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세꼬마의 눈덩이와의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어느 순간 눈덩이가 움직이는가 싶더니 휘청하면서 눈덩이와 내가 같이 구덩이 속에 빠져 버린 것이다.
커다란 눈덩이 밑에 가슴 밑부분이 모두 깔려버린 나는 나오려고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나 좀 꺼내줘"

두 꼬마가 한 손씩 잡고 양쪽에서 잡아 당겼지만 내 몸은 눈덩이 밑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잠깐만 기다려, 집에 가서 삽 가져 올께."

두 꼬마는 집으로 가버리고 한참을 기다려도 그들은 오지 않았다.
얼굴위로 쏟아지는 주먹만한 눈덩이가 물이 되에 흘러내리고....
추워졌다. 윗니와 아랫니가 덜덜덜 부딪힐 만큼

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들은 오지 않았다.
한참 후 지나가던 동네 언니가 나를 꺼내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때사 그들은 삽을 들고 나타났다.
그 후로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는 날이면

"누구누구 아니였으면 넌 이 눈 구경 다시는 못 했을끼다"

난 겨울마다 그 언니에게 감사하며 눈 내리는 겨울 눈사람을 열심히 만들었다 .
얼굴이 하얗게 이쁘던 그 언니는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