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강원도예요"
어른들은 대부분 "감자바위네.비탈이군." 하셨다.
난 우주에서도 지구라는 별에서
동양인으로 대한민국이라 이름지어진 쪼끄만 땅...
그 중에서도 북한과 남한과의 중간부분에 위치한
강원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고향을 물어보신 어른들 말 그대로
감자밭이 유난히도 많고 비탈져 미끄러질 것 같은 땅 덩어리에서,
참외가 노오랗게 익을 무렵 외갓집 안방에서,
팔다리가 유난히 긴 내가 태어난 것이다.
역사적인 순간이였지...
이건 우리 집안에 딸이 없어서였다.
감자는 비탈진 강원도에서 잘 자란다.
척박하고 기후가 냉해도 끈질기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이라서 그런가보다.
봄이면 고향에서는 씨감자를 잘라서 맨손으로 밭을 일궈 심었다.
싹이 나고 잎이 크면 짙은 초록색이 여름날 실록처럼 무리져 있고,
한여름이면 감자꽃이 피는데...
하얀 감자는 하얀꽃을 피우고 자주감자는 자주색꽃을 피웠다.
수확철이면 밭에도 감자,마당에도 감자,봉당에도 감자.
솥단지 안에도 감자, 보리밥 속에도 감자.
반찬도 감자조림 감자볶음 감자국 감자된장찌개.
간식거리도 감자떡 감자범벅 감자부침...
실증나는 감자였었다.
내가 오늘 식상한 감자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가 있다.
매장앞 플라타너스 나무 밑둥에 작은 화단을 만들어서
꽃분홍색 패랭이도 심고 하얀 마가렛트라는 꽃도 심었는데
지나가는 동네아낙네가 꽃에 반해 가슴켠에 끌어안고 훔쳐갔단다.
앞집 운동화 세탁집 아줌마가 어제밤에 봤다고 출근하자마자 일러 주었다.
그래서 비어있는 허망한 나무 밑둥에 뭔 꽃을 심을까 고민하다가
예쁜꽃을 심으면 사람손을 또 탈것같으니까.
"그래 수더분하고 못생긴 감자를 심자."
결정을 내리곤 즉시 실행에 옮겼다.
감자는 매장을 연지 얼마 안돼서 우리 매장에 팔리려 들어왔었다.
감자 자신은 씨감자가 되고 싶었을거다.
근데 초보 장사치라 많은 양을 들여와서 감자가 남아 돌았다.
세월의 흔적이 생긴 감자는 퍼렇게 변해가고 급기야는 싹까지 띄우고 말았다.
감자 자신이야 종족번식이라는 본능으로 일을 저질렀지만 손님들은 그걸 싫어했다.
야하다고 그러는지
손님들도 종족번식을 위해서 낮밤을 안가리고 사랑을 나누면서 남이하면 싫은가보다.
싹나고 푸르스름한 감자를 집에 가지고 가 먹기도 하고
군소리 없이 많이 사는 착한손님에게 거져 주기도 하다가
감자 두알을 접시에다 물을 담고 올려 놓았다.
그랬더니 때는 이때가 싶은지 싹이 마구 올라오고 뿌리가 사방으로 뻗어가더니
글쎄....남사스럽게 새끼까지 낳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감자부부는 매장안에서 가족을 이루고
오손도손 살고 있었다.
감자부부는 금실이 좋아 새끼가 자꾸 늘어가고
접시집이 좁아서 낑겨 사는게 안쓰럽던 중
오늘 나무 밑둥에 감자가족을 꽃도둑 덕분에 심게 되었다.
난 기대하고 있다.
감자가 싹을 길게 뻗어서 꽃이 하얗게 피기를 하얀감자니까 하얀꽃을 피우기를...
왜?자주색꽃을 피우면 이상하니까.
감자를 심으면서
강원도 땅 보다도 비좁고 척박한 나무밑에서 잘 자랄지 염려를 했다.
무엇보다도 화려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아서 사람들을 유혹하지 않을 것이기에
가을이 와서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뚝뚝 질때까지
감자가족이 잘 살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감자꽃이 피는 여름이면 비탈진 고향이 그리워지게 된다.
하얗게 핀 감자밭 두렁을 거닐던 어린날과
가슴에 애잔하게 스며들던 안개낀 산야천들...
그리고 감자떡과 감자밥이 지금은 그리 맛있을 수가 없다.
지나고 나면 모든것이 그립고 아름답고 행복한 것일진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