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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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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젠 제발 철 좀 드세요!!


BY 이쁜꽃향 2003-05-29

이틀전 수학여행 떠난 아들녀석으로부터
무사히 학교에 잘 도착했노라는 전화가 왔다.
모처럼 생긴 이박 삼일간의 자유를 만끽하겠노라
꿈에 부풀어 있던 마음은 어느샌가 사라져버리고
녀석의 전화가 반갑기만 하다.
피곤할 녀석에게 소고기라도 먹여 영양보충을 해 줘야할 거 같아
부리나케 식육점을 거쳐 귀가를 서둘렀다.
집에 와 기다릴 줄 알았더니
아직 친구들과 놀고 있는 건지 아침 그대로의 텅 빈 거실.
뭔가 너무 허전하다.

'자유부인'이 되면 너무나 좋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개 *도 약에 쓸려면 없다'더니
맨날 한가하던 그 많던 친구들이
어쩌면 그 기간동안엔 한 명도 시간을 못 낸다는 건지
왜 하필 그 기간에 등산을 간다는 건지,
무슨 회식을 월요일부터 하는 건지,
아무튼 의리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기집애들 같으니라구.
함께 저녁 시간을 맞춰 줄 친구들도 없고
외롭고 처량한 내 신세라니...
차라리 말썽꾸러기 아들놈이라도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기다리다 못해 녀석에게 전화를 한다.
핸드폰도 배터리가 다 되었는지 연결이 안 되고
녀석은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다.
에구...
이렇게 시간이 더디게 갈 줄이야...
한 시간이 하루보다 더 지루하다.
한참만에야 돌아 온 녀석을 보자마자 물었다.
"얘, 엄마 보고싶었어?"
"으응, 보고 싶었지..."
"재미 있었니?"
"아~니,
엄마, 다음부턴 수학여행 안 갈래.
차라리 그 돈 내 통장에 넣어 둘래.
반찬도 맛 없고
에버랜드는 무슨 물가가 그렇게 비싸?
암튼 별 재미었었어...
첫 날 밤엔 레크레이션 하고
둘째날엔 놀이 기구 타고
오늘은 경복궁, 창덕궁 관람하고..."
쉴 새 없이 재잘재잘 보고를 한다.
재미 없었단 말은 순 겉치레인 거 같다. 말 하는 걸로 보아선...

"그런데 너 왜 전화 안했니?"
"엄마, 배터리가 다 됐나 봐.
내려 오면서 버스에서 아빠한테 통화하다 끊겨버렸거든"
"뭐??
엄마한텐 하지도 않구선
아빠한텐 통화 했다구?"
"에~잉,
그래서 나중에 수신자 부담으로 했잖아요..."

나보다 남편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니 웬지 서운하다.
눈치 빠른 녀석이 그걸 알아챘나 보다.
"엄마.
아직 화해 안하셨어요?
친구 엄마들 중에서
엄마 나이가 제일 많은 거 아세요?"
"???"
"아빠 나이는 그냥 보통인데
엄마는 아마 엄마들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거 같아"
"그래서...?"
"그런데
다른 친구네는 아무도 부부싸움을 안한대요.
전교에서 부부싸움 하는 집은 우리집 뿐이야.
엄마.
나이도 제일 많은데
이젠 제발 철 좀 드세요.
언제까지 아빠랑 부부싸움 할 거야?"
친구들에게 다 물어 봤댄다.
너네집도 부모님이 부부싸움 하시느냐고...
에구,
아예 공개 망신을 시켜라...

갑자기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변명이라도 해야겠는데 대꾸할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수학여행 가기 전 날
남편이랑 기분이 상해 내가 삐져있는 걸 알고 간 녀석은
아직 화해가 안 된 듯한 분위기를 눈치 채고
내게 일종의 훈계를 하는 게 아닌가.
한 편으로는 어이가 없고
녀석에게 너무 무안하기도 하고...
잠시 할 말을 잊고 있다가
그래도 뭔가 변명이라도 해야될 성 싶어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얘는...
부부싸움이란 건 있잖아.
큰 소리로 서로 악 쓰고 또 뭔가 시끄럽게 하고...
때리고...
부수고...
뭐 그런게 부부싸움이라는 거지...
우린 안 그러잖아.
서로 의견 차이가 있을 뿐이니깐
부부싸움이라곤 할 수 없잖겠니?"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궁색한 변명을 하고있단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게다가 말까지 더듬거려진다.

"알았어.
알았으니깐요,
제발 앞으로는 서로 기분 좀 나쁘게 하지 마세요~"
녀석은 그만 말하란 듯이 냉정하게 말꼬리를 딱 자른다.
어휴~
민망해라...
졸지에 난 철딱서니 없는,
나이 값 못하는 에미가 되고 말았다.
으휴~
이젠 자식 앞에서 말다툼도 못 하겠구만.
딸이었으면 저렇게 말하진 않았겠지?
에구...
딸 있는 엄마들이 너무 부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