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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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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행복은 어느 학교에서


BY immin 2003-05-29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을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식당에 들어가 어느 음식을 먹을까 하는 자잘한 것에서부터 어느 남자

와 결혼을 해야 할까, 하는 데 이르기까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 머

뭇거리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며칠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고 심지어

는 정신이 다 나가도록 밤낮 그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시원한 답

이 나오지 않아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선택도 있다. 더구나 요즘처럼

수많은 정보가 나도는 세상에서 선택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나밖에 없는 우리 아이의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일이 내게는 그렇

게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그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나의 선택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

기 힘들어서 그럴 수도 있을테고, 내 선택의 잘잘못이 3년 뒤에나 정

확히 가려질테니 내 인내심의 부족을 탓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산에 들에 꽃이 흐드러지게 핀 화창한 봄날 꽃 속을 거닐면서도 나

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 없었고 오히려 서글프기만 하였다.

나는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심한 우울증에 걸려 버렸다. 나는 소

금에 절어 축 늘어진 배추처럼 절망과 분노와 슬픔에 절어버렸다.

내가 아이에게 추천한 학교는 예전에 일류 학교였지만 지금은 주변

환경이 열악하여 구성원이 좋지 않다고 평이 난 J 고등학교였다. 그런

데 아이는 여름방학 때 함께 중국 여행을 갔던 이웃 형들이 다니는 부

속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싶어했다. 대입에서 내신 성적이 점점 중요해

지고 있는데 학생 수도 적고 아파트 아이들이 많이 몰리는 부속고등학

교보다는 학생을 거의 두 배나 많이 뽑고 성적이 낮은 아이들이 몰린

다는 J 고등학교가 우리 아이에게 맞는 학교일 것 같았다.

아이와 실랑이를 하면서 나는 정말 어느 학교를 권해야 할지 고민하

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엄마 나 어느 학교에 가나 일등 할 수 있

어. 내가 가고 싶은 학교에 가게 해 줘. 하는 말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나의 예측은 적중하여 아이가 입학한 부속고등학교로 주변 중

학교에서 잘한다는 아이들이 대거 몰리고 J 고등학교는 미달이었다.

시에서 본 학력 평가 차이도 엄청나게 벌어져서 같은 시내에 있는 학

교인데 이처럼 차이가 많이 나는지 나도 놀랄 정도였다.

아이와 나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는 스트레스

를 심하게 받으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물론 7시 30분에 등교하여 9

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느라 힘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 성적이면 J고

등학교에서 여유를 가지고 공부를 해도 전교 등수가 잘 나올텐데 아이

가 입학한 학교에서는 1점에 수많은 아이들이 붙어 있어 경쟁이 치열

했다. 시험을 볼 때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데 아이는 바짝 긴장

을 했다. J 고등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은 중학교에서 못하던 아이들도

상위권에 있는데 부속고등학교에서는 상위권 아이들이 밑으로 쳐져 버

렸다.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정보를 통해 우리 아이뿐 아니라 잘하는

아이들이 몰린 학교로 간 아이들은 상심했다.

엄마 말을 들을 걸, 아이는 이제 후회하기 시작했고 엄마인 내가 적

극 나서야 했는데 아이의 의견을 존중한답시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다

니.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인데. 하는 안타까움에 엄마인 나는 늘 가

슴이 답답하다. 점점 웃음을 잃어가는 아이에게 나는 학교를 때려치우

고 검정고시를 보자. 하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 아냐, 더 해 봐야

지 2개만 더 맞았으면 됐는데 내가 왜 그 답을 선택했는지 몰라. 아이

는 피곤해 하면서도 다음 시험에선 실수를 하지 않을 거야. 다짐을 한

다.

바보,J 고등학교에 갔으면 얼마나 좋았어. 한 쪽 눈을 감고 시험 보

아도 됐을텐데. 경쟁이 심하지 않아서 마음도 한가롭고 학교 생활도

즐거웠을테고, 나는 몇번 얘기하다 안 되겠다 싶어 이 학교의 좋은 점

을 들춰내어 아이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좋은 아이들이 많이 몰렸으니

까 수능 점수는 잘 나올 거야. 그러나 아이의 퀭한 눈에 나의 위로 같

은 건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절대 평가라서 웬 100점이 그리도 많은지 하나만 틀려도 전교등수

가 어머어마하게 내려가니 정말 입시 지옥이라는 말이 꼭 맞는 것이

다. 아이를 심한 경쟁에 노출시키지 않고 지켜주고 싶었는데 이젠 어

쩔 수 없이 살벌하고 치열한 전쟁터로 내보낼 수밖에 없게 된 것이

다.

아이가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운 것 같아 나는 아이보다 더 무겁고

괴로운 심정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 이민 가자, 시골로 내려가자. 나

는 힘들어 하는 아이 곁에서 늘 이런 소리를 한다. 그러면 아이는 엄

마 헛소리 하지 마. 엄마도 다른 엄마처럼 좀 악착같이 아이를 공부시

킬 생각을 해 봐.

그러나 아이는 힘들어 한다, 피곤에 지쳐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게 슬프다. 그리곤 분노한다. 누구를 향한 분노인가. 이 나라의 입시

제도, 교육제도, 그리고 나의 어리석은 선택과 그렇게 선택하게 만

든 운이랄까 환경이랄까. 그 모든 것들에 분노한다.

어서 어서 우울과 분노를 떨쳐버리고 싶다. 엄마가 웃어야 아이도 웃

을테니. 아이야 웃자. 네가 선택한 학교에서 행운을 찾을 수 있을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