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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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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먹이 운다.


BY 나비 2003-05-27

영등포역!
막차를 기다리며 한층 밑의 계단을 내려가 길다란 의자위에 궁뎅이를
엉거추춤 얹어놓고 이리저리 사람들의 행동을 할일없이 쳐다보고있다.

위층에서부터 어린 남자아이의 울움소리가 계단을 따라서 내려오고 있다.
앙앙! 우는것도 아니고 흑흑 우는것도 아니고..
거의 실신을 하다시피 까무라치는 소리로 울어서,
요즘도 길에서 애 때리는 무식한 엄마가 있나? 하는 마음으로 소리나는 곳을 쳐다본다.

엄마와 이모가 굉장히 멋장이다.
이모는 빨간 두건을 쓰고 치마는 하늘하늘한 원단으로 두겹세겹 겹쳐진 검은 색으로 그야말로 ???~해 보였다.
엄마도 그에 질세라 검정 아래위로 한벌 쫘악 빼 입은 폼이 탈랜트 뺨 때리게 생겼다.
손에는 쇼핑 가방이 하나 가득인데 그중에도 부피큰것 두어개는 장난감이다.

그나저나 악을쓰고 우는 아이를 보니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은 바닷가에서 금방 나온 사람처럼 시뻘겋고
신발은 어디다 팽개쳤는지 발바닥은 시커매진 맨발에다
머리는 무스를 발라논것처럼 축축하니 젖어있다.
울면서도 무언가를 사달라는말을 계속한다.

인내심 있고 참을성 강한 엄마는 머리가 지끈지끈한지 골을 싸매고 있다.
할일없던 기차역의 모든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소란스러운 모자를향해서 둥글게 원을 그리고 쳐다보고 있다.
더러는 나이먹은 아주머니들은 쑤근쑤근 조그만 소리로 저런애들은 아주 혼찌검을 내야 다음에 안 그런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없이 쳐다보고만 있다.
아니..어쩌면 나처럼 저런 녀석은 물 볼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잇을지도 모르겠다.
이모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모여지자 황당한듯 자꾸 어이 없는 웃음을 짓고 잇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기차가 들어오자 아이가 더 죽어나자빠지는 소릴 하더니
급기야는 이모의 멋진 치마를 잡아당겨서 찢어질것만 같다.
그때까지도 곤란한듯 웃움만 짓고 있던 이모 입에서 "쌍놈의 섀끼"라는 욕이 터져 나왔다.

무식하지 않은건지 너무 유식한건지 분간이 안되는 엄마는 여전히 웅얼 거리는 소리로 아이를 달래고 있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아이의 고함에 가까운 소리에 사그라져 버린다.

기차가 오고 발버둥치는 아이를 둘러메고 세사람은 기차에 오른다.

소란스럽고 피곤했지만 설마하니 같은 칸이야 타겠나 싶어서 얼른 자리 찾아 앉아있다.
아이 우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 온다.

어느 아저씨가 "이놈~ 그치지 못해"라고도 얘기하고
마음좋은 할머니는 "뚝! 그쳐라 착하지" 달래보기도 한다.

점점 가까이 오더니 내 등뒤로 와서 아이랑 아직도 싸우고 있다.
보다못한 내가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장난감이 집에 똑같은게 몇개씩이나 있는데도
포장 뜯는 재미에 사달라고 우는중이라며 대답하는데 어찌나 시달렸는지 입술이 허옇게 된거 같기도 하다.

아까부터 하고 싶었던 얘기지만 남의일이니 참아야 하는데 입이 벌써 앞서가고 있다.
"그런 애들은 아주 호되게 때려줘야되요.기억날만큼 아프게.."
"때리면요~기절을 해서요.."
"그래도 매가 약이지 ,어떻게 다루겠어요?"
모두들 그럼그럼!! 끄덕끄덕한다.

기차는 덜컹덜컹 가고있고
엄마와 이모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집에 가서 사줄게...
우리가 졌다! 항복이다.
김밥줄까? 쵸콜렛 줄까?
아이는 얄밉도록 또릿한 목소리로 김밥은 집에가서 먹을거고 장난감도 꼭 사줘야 된다고 엄마에게 못 박고 있다.

그 소릴 듣고 있는데,
내 자식 일도 아니고 내 돈들어가는것도 아닌데,

기차가 다 가도록 난 그 아이를 힘껏 한대 때리고 싶어서 주먹이 겨울밤 문풍지 울듯이 부르르~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