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둘째 아들녀석이 이박삼일 수학여행을 떠났다.
어젯밤 내내 잠이 안 온다고 설레이더니
아침엔 학교까지 태워다 준대도 필요없다며
친구들과 함께 가겠다고 걸어서 나갔다.
간식으로 음료수를 준비해 달라는 담임선생님 부탁이 있어
어차피 내 차로 나가봐야하는 데에도
녀석은 끝내 내 차를 타지 않았다.
'품 안의 자식'이라더니...
온갖 정성 다 쏟아 주었더니
엄마보다 제 친구가 더 좋다고 바람처럼 가 버려?
이런 배신자 같으니라구...
꼭 십년 전 이맘 때,
장남이 수련회 간다고 베낭을 꾸려 나서는데
너무나 신나해하는 그 모습과는 반대로
처음으로 아들을 떠나 보내는 서운한 마음에
버스가 출발하여 안 보일 때까지 길 가에 서 있었건만
아들놈은 차창 밖으로 일별도 안 주고
친구들과 히히덕거리느라
제 엄마가 밖에 있는 건 안중에도 없는 듯
그렇게 떠나버리고 말았다.
한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서운한 마음에 서럽게 눈물을 글썽이던
내 마음을 그녀석은 짐작도 못했으리라.
둘째라고 별 다르랴 싶어
올해에는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으리라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버스가 떠나기를 기다리는데
요녀석은 대체 어느 쪽 자리에 앉았는 지조차 짐작도 안 간다.
오늘은 눈물 대신 피식 쓴 웃음만 나온다.
어젯밤,
역시나 설레임으로 잠 못 이루는 아들놈을 바라보자니
은근히 섭섭하여
혼자 술 한 잔 하며 아들녀석에게 투정을 부렸다.
'에구~
너 수학여행 가 버리고 나면
엄마 혼자 얼마나 외로울까~'
'왜 혼자야?
엄마네 영감 있잖아~'
녀석은 아빠에게 핀잔을 들은 후면 꼭 '영감'이라 칭한다.
유감스럼 마음을 일부러 강하게 표현하려는 의도다.
'그 영감 꼴도 보기 싫으니깐 그러지...'
'왜??
또 싸웠어?
엄마가 뭐 어린 애야?
맨날 싸우게?'
녀석은 꼭 날 철 없는 애미로 만들고 만다.
그래서 다투게 된 경위를 대충 말 해 줘야 한다.
'엄마 잘못도 아니구만.
그래서 아빠가 또 뭐라 했어요?'
이런 땐 녀석은 마치 심판관이 된 듯
나름대로의 의견으로 잘잘못을 가린다.
'그럼 엄마,
내일부터는 찜질방도 가고
싸우나도 가고 밤새 시간 맘 놓고 팍팍 써버려.
그러면 안 심심하잖아...'
'그럴까...'
대답은 그렇게 했는데
막상 오늘 날이 밝고 보니 뭘 하면 제일 좋을까
선뜻 떠 오르는 생각이 없다.
우선 이틀간 아침에 늦잠을 실컷 자도 된다는 것,
저녁 밥 신경 쓸 필요 없다는 것,
밤까지 내 시간으로 모두 써도 된다는 여유로움...
아~
난 드디어 '자유부인'이다!!
친구들에게 전화하여 저녁 약속부터 하고
피부관리실에도 들리고
'테니스 엘보우'인가 '골프엘보우'인가 물리치료도 좀 받고...
오후 등산도 좀 하고
싸우나에도 가 보고,
아이쇼핑도 좀 하고...
아마도 아들 없는 틈을 타 영감이 화해무드를 조성하려 들겠지...
요번엔 절대로 그냥은 안 넘어갈 거야.
친구들과 미리 술자리 약속이라도 해 버려야지...
기왕이면 한 오박육일 쯤 수학여행을 갔으면 더 좋았을 걸...
아예 나도 여행이나 가 버리게...
매일 쫑알대던 녀석이 곁에 없으면 아무래도 허전하겠지?
그 자릴 메우려면 내 친구들에게 메일이라도 보내야겠다.
'얘들아,
나 오늘부터 이박삼일간 자유부인이다.
선착순으로 약속 정해라'라고...
그런데
정말 뭐 신나는 일 없을까??
아주 기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