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시어머니와 딸같이 허물없는 며느리를 보면 참 부럽다.
저렇게 연이 맞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나의 시어머니복 없음에 서러워진다.
우리 시어머니는 올해 연세가 여든되신다.
체구가 작고 아주 단아하시다.
큰댁에 시어머니의 방이 갖추어져 있지만 시어머니는 늘 시골의 옛집을 그리워하시고
또 봄이면 어김없이 혼자 시골에 가시겠노라고 고집을 부리신다.
외로이 빈 시골농가에서 혼자 지내시는걸 볼적마다 시댁 5남매들은 마음이 편칠않지만 당신은 그곳이 좋다고 하신다.
본인이야 드시는것만 빼놓고 맘편하시겠지만
홀로 시골에 부모 내팽개친것같은 자식들 마음은 그게 아니고,
또 주위의 시선에 괜스리 신경이 쓰인다.
시어머니는 정이 많으시다.
우산장수와 소금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처럼 늘 5남매의 자식 걱정으로 애타하시는데
다른점은 그 걱정하는 표현이 징징거림으로 한다는거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늘 환하게 웃던 친정과 비교되어
첨엔 참을수 없이 힘들었지만 그것도 자식걱정의 한방법이려니하고 보아넘겼다.
내가 정말로 참을수 없었던것은 당신이 드시던 반찬국물 묻은 밥이며 국을
한상에서 밥먹던 누군가가 밥 다먹어가는 기색만 있으면 더먹으라며 냉큼 당신이 드시던것을 덜어주는것이었다.
어찌나 재빨리 덜어내시는지 정말 순식간에 벌어지는 상황이라 말릴틈도 없이 ,
그 빨간 고추가루 간국물이 묻고 시어머니의 침이묻은 음식이 다른사람의 밥그릇속에 냉큼 올라 앉아있는거였다.
다들 진저리를 치면서도 수십년간 겪던 일이여서 그런지 궁시렁궁시렁 하면서 잘도 목구멍에 쏟아붙는다.
하지만 깔끔을 떠는 내겐 그것은 끔찍한 악몽이었다.
그럴정도로 정이깊은 시어머니가 내겐 참 유난을 떠신다.
단촐하던 우리 친정이 너무 쓸쓸하였어서 난 와글와글 대식구가 모여사는 시댁이 참으로 좋았었다.
결혼하여 첫해엔 생전 떠보지도 않던 털쉐타를 반년동안 떳다풀렀다하며 시부모님을 위해 정성껏 떠서 드렸고,
무슨 나물이라도 하나 무칠라치면 " 어머니 ! 아 ~~ 해보세요... " 하며 낯간지러운 애교도 떨었고,
용돈도 내가 듬뿍 드려서 귀여움 받고 싶었었다.
하지만 , 어느날 아들을 슬쩍 부르시더니 " 얘 !, 난 네가 주는 용돈을 받고싶다 "
밥상머리의 내앞에 놓여진 맛난 음식은 슬그머니 아들 앞으로 밀어놓고,
어느해여름엔 유난히도 아들내외 자는 방문을 못닫게 하시는거였다.
시골집구조가 그 문을 안닫으면 시어머니와 한방에서 자는 모양새인데 며느리 입장에선 불편했는데도 막무가내셨다.
아들내외손자 한꺼번에 들이닥치면 오로지 아들만 부여잡고 회포를 푸신다. 며느리 손자는 안중에도 없으시다.
며느리 생일 그런것이 세상에 있는건줄도 모르신다.
그렇게 서서히 정을 끊으시더니
어느해 추석에 결정타를 날리셨다.
그해엔 큰댁에서 못오셔서 혼자 추석장을 보고 차례 음식을 만들고 새벽부터 일어나 차례상을 차리고 있었다.
제기 그릇이 딱 하나 모자라서 밤 , 대추를 한 그릇에 담았더니 시어머니가 따로 담으라고 하셨다.
난 제기 그릇이 모자라는데 그냥 놓으면 안되겠냐고 하니까 안된다 하시며 따로 담으라고 대뜸 역정부터 내셨다.
내 짧은 소견으로는 까만 제기그릇틈에 하얀 일반접시가 끼는것보다는
한 제기 그릇에 밤대추 같이 놓는 편이 날것같아서 다시한번 우겼더니
" 야 이 미친년아 ~~~ " 갑자기 듣도보도못한 욕문자가 시어머니 입에서 쏟아져나왔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순간 그자리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거지 ?
마당을 쓸고있던 신랑이 놀라 허겁지겁 뛰어와 " 어머니 !! 무슨 욕을 하고 그러세요? " 하고 다그치자
시어머니는 배시시 웃는거였다.
세상에 , " 야 이 미친년아 ~~ " 하고 고함을 쳐놓고 배시시 웃다니.......
그런 허탈감이 없었다.
그 순간부터 시어머니와 나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장나 버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원래 밤, 대추는 따로 놓는거란다.
그게 제사예법에 맞는거라 미처 몰랐던 내 무지함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며느리에게 대뜸 욕할일인지...
다른 식구들은 전혀 그런 시어머니 모습을 상상 못한다. 항상 정이깊고 단아하고 애처로운 모습뿐이니까...
우리 신랑이 그날이후 내맘을 알아준다. 아니 이해해준다.
그전엔 이런저런 부딪침을 하소연이라도 할라치면 아랫사람이 어른한테 잘해야지 무슨소리냐며
퉁박을 주고 말한마디 뻥끗도 못하게 하더니 이젠 말없이 들어주기라도 하니
내맘 알아주는 내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참을수 있다.
그날이후 어머니 ! 예! 예 ! 는 하지만 마음 깊은곳으로 부터의 정은 싹 가셔버렸다.
이제 더이상 고부간의 애틋한 연은 없고 의무감만 남아있다.
그래서 가끔은 내 좁은 소견이 안타깝지만 이미 돌아서버린 내마음 나도 어쩔수가 없다.
정말 우리 친정부모님이 그랬다면 무슨 욕을 하시냐며 한바탕 투정부리면 훌훌 털어버릴수 있건만 ,
그깟 욕좀했기로서니 뭐 대단한거라고 이렇게 내마음이 꽝꽝 얼어붙어 녹을줄을 모르니 ......
하지만 ,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내 가슴에선 지금껏 용납이 안된다.
어쩔수 없는 인연임을 느끼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