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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32) 달빛 스민 창가.


BY 영광댁 2001-09-04


달빛 스민 창가.

무슨 예감이 이리도 맞을까.
하마 이맘때쯤일거라고 하면서 달력에 가서 보니 보름이다.
보름 .
휘영청 밝은 달, 하늘위에 노랗게 빛을 발하며 총명한 눈으로 내 창가로 오는 저 달...
어느 동화에서 공주님이 따다가 목걸이 해달라고 졸랐다는 달님.

아이들이 학교가는 길에 첫 번째 만나는 그 집의 담벽을 지나갈때면,
빗물과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다다다다... 거리며 내려가기 좋은 내리막길 머리위에서
눈알을 뒤집고 왕왕 거리며 짖던 개 똘똘이가 있었다.
초등5학년, 중1.. 이렇게 어슬막히 자란 아이들이 있었고 ... 그리고 40중년 중반에 들어선 부부가 있었다.
초봄이면 명자나무가 피어 있었고... 신혼이였을때 내가 살았던 집이였는데..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먼 이국으로 간 지 오늘밤으로 한달.
달을 보며 생각해본다.
남자는 일거리가 없어서 이땅에서는 도저히 아이들을 가르킬 수 없다면서
먹고 살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동생이 터를 잡아놓은 그 땅으로 먼저 떠났고
여자와 아이들이 지난 달 하늘의 달이 저리 밝던 보름날...
남편이 먼저 가 있는 이국의 땅으로 대.책.없.이 가는 거라고 ...했을때
새끼들을 앞세우고 가는 그녀가 내 일만 같아서 마음 졸이며 자꾸 나서보던 내 발걸음에
끝내는 눈알이 붉어져 버렸고... 내 눈알도 붉어져 버렸다.

어느 해 사무실에서 한 여자가 기반이 단단한 시댁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며
다른 땅에서 사는 것은 꿈도 못꾸고 있는 남은 우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였을때
그녀는 울었다. 한.없.이 .. 머리를 숙이고 눈물콧물을 흘려가면서....
나는 그 여자가 한없이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이 부럽고,
그리고
무슨 일인지 이 나라의 인습이 거추장스럽고 사는 것이 하도 곤곤해 있던 터여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이 삶을 시작한다는 그녀가 하냥 부러워서
울.었.다.
그때는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낯설게 시작하며 살고 싶었다.
세상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몸도 마음도 너무 시달려 있어서 섬처럼 살아보고
싶은 때였다.
( 맨발로 터벅거리며 저자거리를 돌고 있는 가난한 내 영혼의 서성임이였으리.)

또 한 여자가 아이의 장래를 위해 그 나라로 이민을 떠났다.
그미는 단지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라고만 했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를...
이것저것 모자람 투성이인 나는 내 간단한 사고와 판에 박힌 듯한 내 교육열에 잠시
혼란스러워 하면서 ..그녀를 조금 비웃으면서 .. 그 여자는 부러워 하지 않았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렇게도 갈 수 있는 나라인가..

삶에 목을 걸고 어.쩔.수.없어서 간 그 사람은 그 집 아이가 썼던 책상을 우리아이들에게
물려주고 떠났다. 책상속에 수채그림물감 일체와 붓글씨 도구 일체, 단소와 부채춤을 출 때
사용했던 고운 부채를 담아놓고서...

그 사람들이 떠난 빈 집에서 사흘을 혼자서 울던 개도 어느 날 소리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가고 일주일을 나는 그미의 꿈을 꾸었다.
겁먹은 눈동자로 서성이는 꿈이 절반.
다시 그 집으로 돌아온 꿈이 절반.

얼마나 고생할까... 얼마나 쓸쓸할까...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저 달은 알까.

가을 바람이 분다. 달빛이 일었더니 구름이 달을 싸안고 있다.

일년 열두번 보름이 오고 보름달이 뜨는데 그들이 간 그날 밤처럼 달이 밝을까.
지난 8월 4일 그 밝던 밤의 달빛이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그들의 앞날을 그리 비춰준 달빛은 아니였을까....
내일은 그미의 언니가 경영하는 가게간판에 씌어 있던 전화번호를 가만 돌려볼까.
달빛에게 묻기는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니
그미의 언니에게 가만 물어보리라.

20010902 늦은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