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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41

비둘기 할아버지..


BY 수선화 2000-12-27

'구구구구...'
'창문을 열어주셔요..할아버지..'

이른 아침이면 떼를 지어 날아드는 비둘기 친구들..
마른 기침 채 끝나기도 전에 친구들의 부르는 소리에 서둘러 그네들의 아침 밥을 챙겨드시는 비둘기 할아버지..
우리 친정 아버지..

손바닥에 어제 부터 준비해놓은 먹이들을 올려놓고 하루 시작하는 인사를 나눈다..
'그래..어제는 그 차가운 둘째딸년이 다녀갔단다..가까이 있으면서도 이웃보다도 보기 어려운 딸년을 혼내주려 했는데..막상 보니 그게 않되더구나..'
'구구구구..'
'자식들도 비둘기 너희들만 못하구나..하루 온종일 전화벨 소리에 귀기울이고..혹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에 귀를 세워 보기도 하지만..여려워진 요즘 세상 자식들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아...'
'구구구구....'

아버지..
그래요..
이른 아침 부터..해질녁까지 아버지 친구 되어주는 비둘기만도 못한 자식들이에요..
차거워진 날씨에도 행여 비둘기 제때 밥 먹지 못할까..두터운 쉐타를 걸치고 창을 열어놓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그러다 감기라도 깊어지면 어쩌시려구..
하지만 알아요..
오남매..그 많은 자식들..누구하나 문안인사..드리는 자식 없으니..
어김없이 찾아와 친구 되어주는 비둘기라도 말벗이 되고 싶으신..아버지..

어제 아버지 앞에 버릇없이 길게 누워 다리를 내밀었지요?
'아버지..다리 아파..주물러 주셔요..에구 시원하네..아버지 아직도 손에 힘이 세네...'
이미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 같은 아버지의 손에 힘이 들어있을리 없어요..
하지만..따뜻하던걸요..사랑..이 담겨 있어요..아버지 손에..

어려선 호랑이 같던 아버지가 무섭기만 했는데..
그렇게 이야기들 하지요?
이빨 빠진 호랑이라구..
아버지는..아직 이 안빠진 호랑이예요..
언제든..이가 튼튼한 그래서 위엄이 있는 아버지..인걸요..

아버지..
비둘기들 보다 못한 자식이지만..
늘 아버지 생각 엄마 생각에 눈시울 적시는 둘째 딸이에요..
아시지요??
아버지 엄마..많이 사랑한다는거..
어쩌면 비둘기의 몸을 빌어 온종일 아버지 곁에 머물러 있는지도 몰라요..
서운해 하지 마셔요..
둘째 딸..
늘..아버지 엄마 그늘에 있거든요..

그리 요란하게 열리던 새 천년...
그 한해가 저물어요..
어느때보다도 조용하게 말에요..

새해에는 혼자 슬몃 약속해 봅니다..
비둘기처럼 자주 찾지는 못하지만...비둘기 몸을 빌어 아버지, 엄마를 찾지 않겠다고..
자주..자주..찾아 뵐께요..
전화도 자주 드리고..
꼭..그럴께요..

아버지..
한번도 입밖으로 내보지 못한 말이지요..
'사랑해요..사랑해요..'

밤이 깊었어요..
편히 주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