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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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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즛.. 이 나이에 웬 모험...


BY sharegreen 2003-05-13

개구리 소리가 닫은 창문을 뚫고 간간히 들려옵니다.
작년 6월초 이 집을 짓고 들어왔을 때는 온 세상이 개구리 소리로
들끓었는데, 그 때는 마치 그 소리가 우리 입주를
축하해 주는 듯 아련하게 들렸었습니다.

간간히 들리는 개구리 소리는 이제 봄이 무르익어
여름으로 가고 있는 소리입니다.
벌거벗은 나무는 아예 사라지고 초여름 꽃들이 서서히 피어나고 있습니다.
라일락 향과 색이 비슷한 연보라빛 오동나무꽃이
산위에서 우리집을 내려보고 있고
아카시아꽃은 산 예서제서 피어 초록을 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묘한 냄새를 풍기는 밤꽃은 개구리 소리가 온 밤을 흔들어 깨울 즘이면
만개할 터이고.....

초여름으로 숙 들어간 듯한 오늘 오후,
남편과 함께 우리집을 둘러 싸고있는 뒷산을 넘어 보았습니다.
우연히, 또는 우리의 엉뚱한 의지로 인하여 그리 되었지만,
잠시 어린 아이가 되어 모험을 즐긴 듯,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산뜻한 기분입니다. 살면서도 '저 뒤쪽으로 산을 넘어가면 어디가 나올까? 이 곳에 사는데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에 한번쯤은 순례(?)를 해봐야 할텐데'하고
생각한 적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또, 어느 메에서 할머니들께서
그 귀한 봄나물들을 해오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사실 우리집을 둘러싸고 있는 뒷산은 결코 높은 산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아 사람 다니는 길이 뚜렸치 않은데다,
키 작은 잡목과 가시넝쿨로 뒤덮여 있어 접근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렇다는 것도 오늘에서야 온 몸으로 깨달았지만...

일요일 오후, 아이들은 주중에 못한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고,
우리 부부는 고사리도 캘겸 산책을 한다고 집을 나섰습니다.
항상 다니는 산책길에서 얼핏설핏 보이는 고사리를 캐며 있자니,
마을 돌진기댁 할머니께서 작년 수해로 무너진 무덤위로 올라가 그 뒤로 가면
고사리밭이라고 넌지시 일러주시지 않겠어요.
솔직히 봉다리 하나 달랑들고, 장갑도 안끼고, 낫도 없이
풀과 넝쿨이 우거진 산을 올라갈 마음이 없었지만,
남편이 조금만 올라가 보자고 하고,
올라가다 보니 오동통한 고사리가 자꾸 보이고 해서
에라 내친 김에 이쪽으로 가면 어디가 나올까하는 궁금증이 발해서
산 등성이를 넘어가는 쪽을 택했습니다. 난 은근히 겁이 났지만,
남편은 산이 높지 않고, 방향이 분명하니,
길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고 자신합니다.
아마 운암(우리 마을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 마을)
방향이 나올거라고 예측까지 해가며....

산 중간까지는 키큰 솔숲이고, 잡목이나 가시넝쿨이 없어서
운신하기에 어려움이 없이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솔향까지 맡으며
내려왔습니다. 간혹 고사리가 눈에 띠면 횡재한 기분으로 뜯어 넣으며......
마을에서는 못 보았던, 넝쿨식물의 커다란 흰 야생화도 감상하며.....

그러다 할머님이 한 광주리씩 해오는, 고사리가 무더기로 있는 밭은 발견도 못하고, 길은 고사하고 운신하기조차 어려운 잡목숲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앉은뱅이 자세로, 넝쿨을 헤쳐지나고,
졸졸 흐르는 물길을 따라 걷다가 삼면이 온통 빽빽한
가시넝쿨로 가려져 그야말로 사면초가.
위로 올라가 다시 온 길로 돌아갈 수도 없기에
남편이 용기를 내어 넝쿨숲을 우지끈 밟아 겨우 한 발짝씩,
몸을 비비틀며 그 넝쿨숲을 겨우 벗어났습니다.

한숨을 쉬며 눈을 드는 순간, 우리는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두 세평남짓한 고사리 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굵기가 아기 엄지 손가락만하고 키는 30~60cm나 되는
최상품의 고사리 순들이..
우리는 내려갈 걱정은 제쳐두고 반사적으로
고사리를 훑어서 봉다리에 넣었습니다.
한 20여분동안 그곳을 샅샅이 뒤지며 봉다리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내려갈 틈이 있나 주위를 둘러보았지요.
다행히 한 가시넝쿨을 지나고 나니 습지였습니다.
저 아래로는 길도 보였습니다.

길로 접어드니 목이 타네요. 등줄기는 땀으로 흥건하고....
3시간을 산에서 헤매고 다녔으니......
쯧쯧 이 나이에 웬 모험......
바람이 솔솔 불어와 땀을 식히며 지나가니.
그제사 고사리 봉지의 무게가 느껴지고,
초록의 깊은 빛을 품기 시작한 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003년 5월 11일에)
쯧즛.. 이 나이에 웬 모험...
쯧즛.. 이 나이에 웬 모험...
(산속을 헤매며 거둔 고사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