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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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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BY 아침커피 2003-05-13

재회

참 많이 보고싶었다 
보고 싶어도 갈 수 없었기에 
만나고 싶어도 참고 또 참아야 했기에 
그래서 어쩌면 더 간절함이 더했는지 모른다. 

부처님 오신 날 내가 절에 도착했을 땐 
거의 예불이 다 끝나가는 무렵 정오가 다 되었으니 
스님께서는 신도들과 
앞마당에서 애기 스님 목욕시키는 
그런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먼발치서 스님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이렇게 반가운 날에 
주책없는 눈물은 왜 나는지... 
몰래 눈물을 닦으며 
신도들의 행렬 끝자락에 줄을 서고 
그 행사에 참여했다. 
행사에 참여하기 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스님 얼굴을 보기 위한 급한 마음이였다.
그토록 반가운 얼굴을 보고 가슴이 떨려
사실, 부처님 앞에 뭘 빌었는지 아무 기억이 없다.
아니, 아무 것도 빌지 못했다.
여태 살면서 종교라곤 가진 적 없어 
그리고, 아직 생속이라, 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행렬속에 서있다는 게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삶에 부딪히고 방황하고 
숱한 나날을 고뇌하고 살면서도 
솔직히 얘기하면 
난 아직 내 자신 외엔 
아무도 믿지 않는 편이다. 
어떤 종교든 
믿음은 좋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아직은 세상의 매운맛을 못봐서 그런지 
독실하게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은 없다. 
언젠가 때가 되면 
마음이 가는 곳으로 
발길이 머무는 곳으로 발걸음이 옮겨지겠지. 

그렇게 행사가 끝난 뒤 
점심공양을 하고 
스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3년 전에 봤던 모습과 아주 다르게 
얼굴도 좋고, 성격도 아주 밝아져서
얼마나 마음이 편하던지 이루 말 할 수 없었고
꼭 예전의 모습을 다시보는 것 같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산세가 아주 고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정남향으로 위치한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아담한 절이었다. 
마치 스님을 꼭 빼닮은 그런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내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그날은 보통때와 달라서 
많이 바쁘셔서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꼭 많은 말이 필요치 않는 사이니
이런 것 쯤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참 좋다.
사는 게 별다른 게 있을까?
어디든, 어느 곳이든 
마음하나 편하면 그만이지.

한번은 스님이 출가해서 일년 안되어 
우연히 내게 전화가 왔을 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어서 돌아오라고"
어린 마음에 아우성을 친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웃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누구에게나 맞는 옷이 있고
어울리는 옷이 있다. 
내가 세상을 조금 더 살아보고
이렇게 8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난 지금
어쩌면 지금 걷고 있은 수도생활이 
스님에게는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부터인가
경심스님이라는 법명이 붙은 이름이
낯설지가 않다.
아니, 이런 날을 맞으려고
얼마나 많은 이별연습을 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길지 않는 재회를 하고
"3년 동안 이곳에 머무니 
언제든지 찾아와도 대환영" 이라는 스님의 당부가
귓전을 맴돌며 
돌아오는 길이  
꽃구름 위에 떠있는 것처럼 내내 행복했고
지금도 생각하면 잔잔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 경심(耕心)스님 *
법명 : 경심 耕 밭갈;경, 心 마음;심

8년 전에 출가한 제겐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지금은 경북 청도
수법사 라는 곳에 계시죠 *^^*
출가 후 두번 째 만나는 
누구보다 제겐 특별한 만남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