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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피아니스트'


BY 빨강머리앤 2003-05-02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을 ...' 블라디미르 스필만'이라고
자꾸 잘못 말하게 되는건 아마도 어떤 것에 익숙해진 탓이겠다.
블라디미르 스필만이라는 지휘자의 이름이 오랜동안 클래식계에서
불리워지는 시간에 비하면 영화 '피아니스트'로 새롭게 등장한
이름이 블라디슬로프스필만 이라서 일거다.
조금전 이글을 쓰기 전에 라디오를 통해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연주로 쇼팽의 녹턴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나운서도 잠깐 실수를 한다 '블라디미르 스필만,
아니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이었습니다.제가 왜 이러지요? 자꾸 이름을
틀리게 말하게 되네요.'라며 어색하게 웃었으니...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을 잘 연기한 애드리안 브로디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자리에서 때마침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라
반전메시지를 담은 평화의 염원으로 아카데미상 수상소감을 대신
했다고 했다.
전형적인 유대인의 형상을 한 매부리코의 애드리안 브로디는
그영화속에서 완벽한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을 살았던듯 싶다.
영화배우치고 잘생긴 구석이라곤 찾아볼수 없었던 그의 연기속으로
점점 빨려 드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는 3시간 가까이 되는
영화속에서 거의 혼자 영화를 이끌어 간듯 보였으니까..

'피아니스트'를 보기 이전, 내게 있어 쇼팽은 그저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곡을 쓰고 연주한 음악가, 너무나 대중적이어서
오히려 호감이 덜 가는 그런 음악을 썼던 사람으로 생각되었었다.
그러다, 늦가을 스산한 바람에 남은 낙엽이 떨어져 황량한 거리를 휩쓰는 바르샤바거리가 비출때 흐르는 쇼팽의 피아노음은 가슴깊이
박혀오는 아픔처럼 기억되기에 충분했고, 그후로 쇼팽의 음악은
색다르고 특별한 느낌을 주는것이었다.
그전에 들었던 쇼팽이 그저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꽃잎한장 띄우는듯한 아름다움을 주었다면,
피아니스트에서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연주로 들었던 쇼팽은
가슴아픈 이야기를 담고 물고기의 삶과 부초의 삶까지도 포함해서
흐르는 음악으로 다시 다가 오는 것이었다.

또한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반인륜적이며,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마져 비참하게 파괴하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던것 같다.
유대인 수용소(게토)에 갇혀 먹을 것 제대로 못먹어
삐쩍 마른 노인이 지나가는 할머니의 배급통을 빼앗다가
그릇이 더러운 바닥에 쏟아진걸 땅바닥에 엎드려 핥아먹는
장면에서 전쟁을 일으킨 파렴치한에게
내 마음을 지독히 아프게한죄를 물어 손해배상 청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게토주변의 유대인의 비참한 삶 보다,
스필만이라는 한 피아니스트 행적을 ?느라 게토주변의 유대인을
잠깐씩만 화면에 비출 뿐이었으니, 관객들은 스필만을 통해
당시에 유대인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유대인들을 유추해
볼수 밖에 없었던게 유감이었달까..

당시 폴란드 국영 방송국 소속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던
스필만은 그 명성 덕분에 살벌하기 짝이 없던 나치치하에서
살아 남게 된다. 하지만 숨어 살아야 했던 세월은 숨통 막히는
독일군의 감시아래 살인적인 배고픔을 이겨내야 했던 오랜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배고픔을 해결 해야 했으므로, 스필만은 쥐새끼처럼
폴란드 민병대에 아지트를 잃은 독일군이 사라진 바르샤바거리를
헤매며 폐허가 된 집을 ?고 다녔다.
그러다가, 전쟁전엔 아마도 꽤나 고급스럽게 살았을 법한,
한쪽엔 우아한 피아노가 놓여 있는 집엘 들어가고
먹을 거라곤 단 하나 과일즙통조림을 찾아 냈는데 뚜껑을
딸 방도가 없는 스필만이 난로옆에 놓여진 부지깽이를 들어
뚜껑을 향해 내리쳤는데, 그만 통조림이 바닥에 떨어져 아까운
즙이 바닥에 쏟아진다.
그 통조림이 구르는 방향에 맞춰 고개를 드니 거기에 떡 하니
버티고 있던 그토록이나 자신이 피해 다녔던 독일군이
스필만을 바라보고 있는 그 오싹함이라니....
독일군 장교가 물었다. 이집에 사는냐고... 하지만 너무 놀란
스필만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다시 무슨일을 하냐고,직업이
뭐냐고 묻는 독일군 장교에게 스필만은 드디어 입을
연다. '피아니스트 였습니다'

오랜 배고픔으로 뼈만 앙상하게 드러나고,
오랫동안 면도를 하지 못한 수염과 머리는 덥수룩하고,
때에 절은 옷을 입은 스필만을 향해 독일 장교는 못믿겠다는듯이
스필만을 피아노 앞에 앉힌다.
무슨 곡이든 연주해 보라고.. 독일군 장교가 주문을 하지만,
오랫만에 피아노 앞에 앉은 감회 탓이었을까, 배고픔으로 손가락에
힘이 없어서 그랬을까.. 스필만은 한참동안 두 손을 잡고만
있었다. 그 잠시 동안이 참으로 길게만 느껴진다라고 생각했을때
피아노가 놓여진 창문을 통해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스필만은 쇼팽을 연주한다.
숨어살던 동안만큼 피아노연주에 목말랐던 감정을 쏟아붓는듯한
신들린 연주에 독일군 장교가 감동을 했었던가.
먹을것 가져다 주고 추울거라며 외투를 안기고 '꼭 살아내라'
며 너무나 인간적인 한마디를 던지고 돌아서는 것이었다.

1945년 8월, 독일군이 항복을 하고 세상은 전쟁이 끝났음을 선포했다.
스필만은 전쟁이 끝났음을 알리는 폴란드 인을 발견하고
뜨껍게 그들을 안고자 팔을 벌리며 거리로 나섰다.
독일군이 준 외투를 걸치고 나선 스필만을 독일군으로 착각한
폴란드군인들의 발포는 잠시후,
예전의 정장차림에 폴란드방송국에 앉아 쇼팽연주를 녹음하고
있는 스필만의 미소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나치치하에서 살아남은 폴란드 출신,
유대인이었던,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이 이야기 하는
반전 평화의 메세지 였으며, 때마치 이라크에 몰아친 전쟁의 광풍에
다시 한번 '평화'를 이야기하게 해주는 그런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