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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개비꽃의 끝여름


BY 들꽃편지 2001-08-31

달개비꽃의 끝여름
친구야!
이 꽃을 기억하니?
선능 오솔길에 무리지어 피어있던 달개비꽃을....

넌,
바다 같다고 했지.
바다가 고향인 너는 바다를 생각하고...
산골이 고향인 나는 산봉우리에 걸쳐 있던
하늘같다고 했지.

여름이 한창인
햇볕이 강한 그 날
우리는 손을 잡고
그 오솔길을 걸었고,
숲이 우거진 오솔길가에
파아란 이 꽃이
바다같든 하늘같든 우린 즐거웠었어.

우린 마음이 넓어졌던가?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었고,
무슨일이든 참아낼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고,
아무리 먼길이라도 같이 갈 수 있는 다짐이 있었지.

친구야!
다시 그 오솔길을 갈 수 있을까?
올 여름 장마가 끝나면
선능을 거닐고,
달개비꽃이 핀 길가에 서서
지난날들과 같은 약속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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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길 가장자리에 슬쩍 고개를 내밀고 피어 있는 달개비꽃을 봅니다.
여름이 자꾸 져가고,
가을이 조금씩 밀려오는 늦여름.
하늘이 계절 따라 빛이 납니다.
그 하늘빛과 흡사한 달개비꽃잎.

얼마전부터 잊혀졌던 꽃이름 달개비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아파트 화단엔 애기사과가 붉게 익어 나무가지가 휘어져 있고,
대추열매가 햇살을 반사하며 옥보석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플라타나스 넓직한 잎이 기운을 잃어 늘어져 있고,
여름에 피던 들꽃들도 자취만 남아 빈잎으로 휘청거립니다.

비어가는 여름 뜰에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 달개비꽃에게 관심을 주었습니다.
하나의 줄기에 하나씩 꽃을 달고,
그것이 무거워 어깨를 숙이고 있었지...
꽃잎이 내 다리에 닿을 듯 합니다.
난 꽃잎이 다치지 않게 똑바로 걷던 걸음을 비껴 걸었습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은 듯,
달개비꽃은 싱싱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알아 볼 수 없게 생겨난 작은 얼굴은 상처가 난 것도 있었습니다
학교로 오고가는 아이들 신발주머니에 상처가 났을까?
부리나케 걸어가는 아줌마의 장바구니에 충격을 받았을까?
애기의 승용차인 유모차라는 것에 치였을지도 모르지...

여름이 끝나갑니다.
여름따라 여름 들꽃도 져 갑니다.
여름이 달아납니다.
달아난 여름이 달맞이꽃을 가져가고,망초꽃을 훔쳐가고,달개비꽃 마져 따 갈려고 합니다.
가지고 가십시요.
추억은 남아 있으니까요.
추억은 남아 가을이 의미있게 다가오니까요.

하늘색 달개비꽃은
아마도 가을 하늘과 바꿔도 될겁니다.
그래도 아무도 모를겁니다.
둘이 너무 닮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겁니다.

여름의 끝.
달개비꽃도 끝.
여름 들꽃, 우리는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