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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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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묻지마세요


BY 밥푸는여자 2003-04-30

      
      과거를 묻지마세요..
      이렇게 말하면 대단한 과거를 가졌다 생각하겠지..
      
      학창시절..중학교 때 과학 선생님께 하극상을 벌린 
      죄로 일주일 여학교 시절 시위를 주관했다는 이유로 
      일주일..교무실에서 근신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고 내 성품이 강하거나 야무진것은 아님...)
      (사실 주관은 아니다 책임만 졌을 뿐..믿기나말기나다)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남영동 고속버스 터미널로 갔고
      그곳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집으로 내려가 주일 오후에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고단한 삶이었다. -_-; 
      
      시위 사건 직후 토요일 늘 터미널에서 반갑게 맞아주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니 아버지께서는
      아주 멋진 파티(?)를 준비하고 계셨다.ㅠㅠㅠㅠ
      
      파티는..수돗가에 즐비하게 준비물을 가져다 두셨다.
      준비물..짚, 잘게 부순 연탄재, 동그랗고 볼그스름한 
      이뿐이 비누, 놋그릇 그리고 찌든 양은 냄비 왕창..
      
      한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왔는데 도착하자 마자 윤이 나게 
      닦으라는 것이었다. 일하는 언니도 있었는데 굳이 내게 일을
      맡기신 것에 대해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버지의 눈빛은 평상시와 너무 달랐기에 어떤 말대꾸도 할 
      수 없었다. 두시간 넘도록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 둔 그릇을
      두고 아버지와 나는 은행나무 아래 앉아 이야기를 했다.
      
      버려진 짚과 연탄재를 가지고 너는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
      그릇을 닦으며 어떤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느냐는 질문 
      
      양은 냄비와 놋그릇을 닦았노라 답했다..
      두 번째 질문에 답하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쓸모 없는 것으로도 쓸모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거
      윤기 나게 닦는 일을 하며 침묵하고 일했다는 거 
      그릇을 닦으며 내 속에 정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거
      
      오늘..
      짚도 없이 연탄재도 없이 그 시절 이뿐이 비누도 없이
      아주 쉽게 닦을 수 있겠금 준비된 철 수세미로 그릇을 
      닦았다..싱크대를 닦고 가스렌지를 닦고..마음을 닦았다.
      늘 말없이 깨우침을 주시던 내 아버지를 그리워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