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번개-
컴퓨터 대화방을 종횡무진하며 통신에 빠져 살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 오랜 역사는 아니지만 한 1년은 그렇게 지냈습니다
통통 튀는 대화가 재미있고 어딜 가나 유머와 재치로 인기'짱'을 누렸으니 궁금한 사람도 많고 만나고 싶다는 사람도 많아 고르고 골라 한 두 사람씩 만났습니다
와글와글 '떼벙개'장소에 나가보기도 하고 단둘이 오붓하게 데이트도하고, 몇날 몇시쯤에 어느 곳을 지난다는 소식을 미리 흘려 지나는 길에 5-6명 떼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 융숭한 대접을 받은적도 있습니다.
남들은 나이에 걸맞지않게 무슨 망측한 짓이냐고 비웃을지 몰라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때 나이 50세, 통신을 한다는게 뭔가 앞서가는 느낌이고, 빠르게 움직이는 눈치와 재치가 따라주고 손가락이 잘 움직여주니 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나름대로 뽐내며 그렇게 세월을 보냈습니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도 많지만 평생 잊지 못할 웃기는 번개스토리가 있습니다
통신에서 만난 부산사람 가족과 만나 오손도손 알콩달콩 깨소금 쏟아지는 대화를 나누며 여행길에 오른 사람들을 공항에 배웅하는데 이날 그 사람들이 궁금해 함께 배웅 나온 대화명 '뿌리'님과 둘만 남게되니 그냥 헤어지기 섭섭해서 건수를 만든 이야기를 잠깐할까요? 하하
마침 점심시간, 배도 출출하고 옷도 잘 빼입고 메이크업도 예쁘게하고 나왔으니 가까운 곳누구라도 만나볼까?
'점심같이 묵을까?'
"호호헤헤 그래요, 언니! 잼있지롱롱롱... 하하호호"
둘이서 속닥속닥 모의를 해 몇가지 조건에 딱 합한 한 사람을 찍었는데 내게 관심있고, 그 사람의 직업이나 직장이 확실하고, 나도 괜찮게 생각되는 사람....? 곰곰
뿌리와 나에게 선택된 한사람은 어느 대학에 근무하는 대화명 '모닥불' 45세 서울남자.
유머센스가 탁월하고 나름대로 신원이 확실하고 가끔 대화방에 들어오면 그 능란한 재치와 빠른 타자속도며.. 썩 괜찮게 보였다고요....
'따르릉~~~ ' 전화 걸어 점심약속을 하고 학교에 찾아갔습니다
마침 '모닥불' 일명 딱부리님은 동료 교수님들과 월모임이 있어 회식하는 날이였습니다
얼떨결에 그사람들의 회식자리에 함께 끼이게 되었고 워낙 황당한 자리라 적당히 소개를 해야하는데 즉석해서 닥불왈 "우리들 고등학교 동창이라해요.. 알았죠! **고교 동창생!"
뿌리는 41세 서울여자, 나나(당시 나의 대화명)는 50세 여자. 닥불은 45세 남자,,,
10년을 왔다갔다하며 동창연기를 해야하니 얼마나 황당무개했던요.. 하하
그 더운 여름에 가슴까지 두근두근 콩당콩당 뛰면서 등줄기에 식은땀 비지땀을 있는대로 흘리면서 아구찜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흐이구... 정말정말 몬살어.. 괜히 왔나바..'
지금도 생각하면 웃겨 죽겠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털보교수님은 뭐가 그리도 궁금한게 많은지 쉴새없이 질문을 던지고,, 맞은편
에 앉은 사람은 계속 '민** 공부 잘했어요? 정말이예요?'
'맨날 백화산에 소풍갔어요?'
나나: '예~ 백화산에만 소풍갔어요~ 딴데 뭐 갈데가 있어야지요~ 시골이니까'
[사실은 나나 백화산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그날 첨 들은 산임]
'민교수는 공부는 잘했어요,, 아이들을 잘 때려서 글지.. 히구~ 말썽재이!'
털보교수:'나 그동네서 군생활 했는데~ 바닷가에서~ 어쩌구저쩌구~~~ '
나나: '(아이구,,,,클났음.. 그동네 지리도 모르는데 군생활했다고 아는척하다간 죽음이얍!).
네~ 그러셨어요.. 그럼 동네 잘~ 아시겠네요~'
다른교수:'이렇게 나이들어 여자동창이 찾아주면 얼마나 좋아! 그참!! 민교수는 복도많어'
나나:'그러게 말이예요~ 왈가닥이 인기는 있어가지구~'
급기야 뿌리한테서 쪽지전달..
모닥불; (쪽지를 펴보고 '씨~익' 웃으며 내게 쪽지를 건네주는데) '언니~ 말대답 좀 그만해요...자꾸만 경상도사투리억양 나오잖아요,,, 딱부리는 충청도란말예요~ 쉿!' 움하하하하
동시다발. 때맞춰 털보교수가 물어요
"근디~ 민교수는 충청도사람인디 이분은 경상도말을 쓰시네요~ 고향이 다르신가요~?'
급해진 딱불... [그때까지는 가만 있다가]
"야~가 경상도남자헌티 시집가더니~ 영~ 문디 다 돼부릇네유~~"
"아-하하하하" 그냥 웃음으로만 일관하며 때운다는 것이 얼마나 고역이지만 재미있던지..
식사가 끝나고 나오면서도 인사치레로 모닥불은 털보교수님을 자꾸만 차마시러 같이가자 권하고 우리는 따라올까봐 가슴이 아직도 쿵쾅거리고,,,
그런데 글쎄.. 털보교수님이 못이긴 척하며 따라 오는거 아니겠어요,,, '흐이구메.. 난리아녀..'
나나-털보교수님께 선수를 쳐야했어요 "교수님 안녕히 계세요~~~" [허리 꿉뻑^^]
그리고는 딱불을 잡아 댕겼습니다. "너 따라와바!!! 교수님 업어오지마!!" 하면서 끌었습니다.
위기모면!
그날 찻집에서 뿌리와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할수도 없었습니다.
너무너무 웃기고 가슴두근이 가라앉지도 않고.....
딱불은 태연~한척!! 능청을 떨고..
스릴만점, 재미만점, 웃음폭발, 배꼽이 떨어져나가게 웃기만 하다가 왔습니다.
그 번개후유증으로 나나는 지금 떼번개 단둘번개 그 어떤 번개도 하지 않고(?) 조신합니다
대화방도 안가고 이렇게 추억담만 늘어놓으면서..
그날 속아준 **대학 님들에게 미안합니다.
털보님 죄송합니다~~~
아직도 황당해서 가슴이 쿵쾅하네요..휴~~~
*모닥불님 잘 있나요? 혹시 이 글 보면..... 전화하지 마요~~~~ 메롱^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