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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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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며..


BY 산이 2001-08-30

반쯤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싸늘한 바람이 들어온다.
발밑 저어기 어디쯤..돌돌 말려져 있던 이불을 끌어덮으며..
아이를 끌어안아본다.
아침이다
일어나서 청소도 하고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아이 유치원도 보내야 하는 아침이다
나는 아침이 좋다
말간 도시의 시작이 좋고..
하루의 기대가 커서 아침이 좋다.

부지런히 열심히 열심히
집안일을 마치고 식탁에 앉아
밥도 먹고 국도 먹고 계란 말이도 먹는다
아침이 제일 맛있다
아침을 제일 많이 먹는다

아이는 유치원 가고
남편은 일하러 갔고
나는 산으로 간다

달칵 아파트 현관문을 잠그고..
운동화에 무릎나온 츄리닝 바지에
헐렁한 티를 입고 ..
밤새 얼린 얼음물통하나 들고
산에 간다.

8월의 산은 초록 바다다.
토란대는 우산 보다 더 크고 돗자리 보다 더 넙적하다.
뉘집 호방덩쿨인지 꽃도 이쁘고 잎도 쌈싸먹을 만큼
달콤해 보이고 호박은 보일듯 말듯 여기저기 달려있다.
절대 따가면 안되겠지..안되겟지.
.
밤송이는 까까머리 동네 아이머리처럼
송글송글 모양새가 제법 태가나고.
감도 초록빛으로 언제 바알간 색이 될지 궁굼하기만 하다.
여기저기 알수없는 칠덩쿨도
능청능청 흐드러졌다.

물마시고 땀훔치고 조금 쉬었다 다시 오르고..오르고..
땀훔치고 물마시고 조금 쉬었다 다시 오르고..오르고..
조금 쉴때는 바람도 나랑 같이 호흡을 맞추는지
가까이 온다.

산이 제일 좋다.
여름산 가을산 겨울산 ..다 좋다.
계절별로 변하는 산이 좋고
계절따라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다잡아 줘서 좋다.

갇고 싶은것도 많고
보고 싶은것도 많다
입어보고 싶은것도 많고
먹어보고 싶은것도 많다
사고 싶은것도 많고
꾸며놓고 싶은것도 많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부질없는 것
한때의 큰 욕심이라고 ..허영이라고..
알면서도 잊어가는 나를 산은 다잡아 준다.

오르고 나면 내려가는건 식은죽 먹기.
온몸의 살들이 출렁 출렁
재미있다.

빨리 내려가서 ..빨리 집에가서
이모가 담가다준 된장 지지고..
냄비밥 고슬고슬 해서
고추랑 상추랑 날된장에 푹푹 찍어..

새벽한시에 일나가서..
낮 열두시에 퇴근하는 ..
새벽시장에서 일하는 ..
착한 신랑 힘든 신랑
맛있는 점심 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