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 토~옹~!!'
홈통으로 떨어지는 빗물소리에 무심코 밖을 내다봤다.
아침부터 끊임없이 내리는 빗줄기에 이젠 스산한 한기마저 느껴진다.
빗줄기 사이 사이로 언뜻 언뜻 그리운 얼굴이 엇갈리며 지나간다.
뜨거운 커피생각이 났다.
'아이참,또 이렇게 늦어버렸네..'
공항을 빠져나오는 나는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예정보다 한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나는 얽혀버린 스케줄을 머리속에서이리저리 훑고 있었다.
가뜩이나 바쁜데 횡단보도에 신호가 걸린 나는 입이 댓발 나와버렸다.
이상하게도 늦는 날에는 꼭 신호도 잘걸리고,길도 막힌다.
어느정도 여유를 두고 나오면 그날 따라 시원하게 길도 뚫리곤하는
머피의 법칙을 언제나 몸소 체험하고 다니는 이유에서 였다.
고개를 들어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행인들을 하나 하나 쳐다보았다.
그 순간...
너무도 그리운 얼굴을 발견한 순간 그만 온 몸에 피가 얼어붙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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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금 확인하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렸으나
옆을 가로막고 서있는 얄미운 버스덕에 그만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까닭모를 설레임에 슬몃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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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그를 처음만난건 학교교정이었다.
고등학교 생활을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인 학교 선배.
참으로 부드럽고 자상한 선배였다.
여러해가 지나고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때의 설레임은 두번 다시 경험하지 못할 순수함이었다.
결혼얘기가 오고갈 즈음,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적극적인 남편의 애정공세로 그만 남편에게 마음이 기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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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참으로 좁다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죄도 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세상살이.
집으로 돌아와서 선배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혹시나 멜주소가 변하지는 않았나 싶었는데..금방 답장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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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기억 저편의 17살의 나로 돌아가 가슴에 두손을 모은채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