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줌 마 유감
나도 이젠 30줄 중반에 들어선 어엿한 아줌마가 되었다.
초등학생, 유치원생 줄줄이 달린 펑퍼짐한 아줌마.
그래도 생머리, 청바지가 좋아 누가 아가씨라고 불러주는 날엔
집안이 시끄러운 대한민국 아줌마.
자기가 늙는 건 자신이 모른다고 나 역시 아줌마가 된지는
거의 10년이지만 내가 아줌마구나 하고 실감하건 요 몇달사이니까
그간 얼마나 착각 속에 살아왔던지...
처녀같은 아줌마, 미시로 어정쩡한 이름으로 가면 아닌 가면에
퍼진 몸을 반쯤 가린체 아직도 처녀티가 난다고 혼자서
위로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요즘 난 내가 아줌마가 된걸 피부로 느낀다.
모두들 말은 아줌마는 용감하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그건 실상을 다 모르는 말씀.
그건 모두에게도, 모든 일에 해당하지도 않는 것임을 느낀다.
아줌마가 되어 용감해지는 것들과 오히려 소심하고 비겁해지는 일들이
확연히 양분되니깐.
우선 용감 무쌍해진 몇 가지 들.
처녀적엔 비닐장갑 끼고 고개 돌리며 겨우 칼질하던 고등어 대가리를
단번에 맨손으로 잡아 쳐서 동강낸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어떻게 요리해 먹나 궁리하며,
길가에 오줌 누는 아이들을 '너 화장실가서 싸'하던 내가 우리 아들
급하다면 국도 건 고속도로 건 마구 세워 고추 내어 싸게 해야 시원하다.
지하철이고 버스고 싸움이 난 자리엔 괜히 끼어 들어 내용의 시작과 끝을 다 알아야 속 편히 집에 온다.
슈퍼에서 긴 줄을 보면 직감적으로 세일이거나 덤으로 더 나눠 주는 줄임을 알아채고 무조건 서고 본다.
내 앞의 여자에게 물어도 그녀도 역시 뭐 나눠 주는 줄도 모르고
무조건 서있는 나랑 같은 과. 몇 십 분 기다려 다와 갈 때야
팽이버섯 공짜로 나눠 주던 줄이었다. 이게 어디냐. 찌개해서 먹고 구어도 먹어야지.
며칠 전 여행 갔다 오며 식사 마치고 나오는 길에 차 안의 오징어가 생각났다.
구워서 가면 가는 길에 잘 먹겠지 싶어. 도로 돌아 식당에서 구워 나올 때의 뿌듯함.
바쁜 주방 아줌마 들 틈에서 용감하게 오징어 굽는 내 모습.
나도 아줌마 였다.
돌아오는 길에 알맞게 구워 따뜻한 오징어를 씹으며 내가 이젠 아줌마 구나.
영락없는 ... 눈물나게 실감되는 날이었다.
아줌마가 되어 소심해지고 나약해지는 것도 많다는 사실.
나도 내게 놀라지만 참 희안 한 것들에 소심해진다.
예전엔 공포영화를 넘 좋아해서 임신해서도 즐길 만큼 광이었는데 근데 정말 이상할 정도로
잔인물이나 공포물은 봐내지를 못하게 되었다.
영화뿐 아니라 심지어 뉴스나 시사 보도에서 폭행 살인 유괴 강간의 보도만 나와도 채널을 돌린다.
이런 것들은 무서워 지는구나.. 나도 놀란다.
놀이공원도 그렇게 즐겼는데 이젠 다람쥐 통도 못 탄다. 큰애 데리고 탔다가 눈물,콧물 다 짜고 애보다 내가 더 파래서 내렸으니.....
그리고 가장 비굴한 느낌이 드는 것.
아이들 교육문제. 누군가 좋다는 학원이나 교습은 주머니가 구멍 나도 해주고 싶고 귀가 얇아진다.
누군가 촌지를 주고 학교를 다녀 왔다면 나도 선물이라도 하나해야
맘이 편하다. 그래도 촌지만은 안 하리라 맹세한 것은 아직 지키지만 글쎄 아이들에게 약해지는 이 맘을 내가 모르겠으니 나도 장담할 수가 없다.
진리를 외치며 깃발들 용기가 엄마 이름으로는 자신이 없어진다.
나도 이젠 완벽한 아줌마 임을 스스로 인정해버린 요 몇 달.
보기 싫지 않을 만큼 펑퍼짐하고 팔둑 굵은 아줌마 람보.
두 아이 엄마답게 목소리도 한 옥타브 올라가고 굵어진 손색없는 아줌마.
이 람보들 때문에 대한민국 가정과 나라가 지탱함을 확신한다.
오늘도 10원 더 싼 시장으로, 2000원에 사과 한알 더 주는 슈퍼로
다리품을 팔지만 이 겨울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아줌마, 바로 내가 아닐까.
역시 아줌마 다운 자화자찬일까?
점 점 더 경기가 나빠지고 마음 속까지 추워지는 겨울이지만 내 가족은
그래도 람보 엄마가 있어 든든함을 알기에 오늘도 열심히 내 나름대로
아름답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