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내가 자주 가는 산이 있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내게 있어,
그리고 이동네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 자연의 향기와
넉넉함을 전해주는 유일한 곳이다.
오늘은 중학생들의 사생대회가 열리는 모양이었는지
오랫만에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저희들 끼리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벤치며 계단에 앉아 스케치도 하고 원고지에
봄을 옮겨 적는 아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오늘은,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산행을 하기 위해
눈에 익어 다정한 것들을 하나씩 밟아 갔다.
오르막길에 하나씩 놓여있는 나무계단을 지나,
작은 소롯길을 접어드니 지난번에 온산을 분홍색으로
물들어 놓았던 진달래가 다 져버리고 그자리를 대신해
연둣빛 푸른 새잎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가끔씩 눈에 띄는 상록수만 아니라면 오월을 기다리는
산빛은 온통 연두색 물감을 풀어 놓은듯 해보였을 것이었다.
잎이 피는 모습들이 자못 신기했다. 이름이 다른것처럼,
잎이 피는 모양도 다 다르게 피어나는 모습이 앙증맞을
정도로 이뻤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우리를 앞서 올라가고,
어느새 산중턱에 오르는데 눈쌀이 찌부려 지는 정경이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곧 입주가 시작될거라는
아파트가 25층의 위용을 자랑하며 산아래를 장악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머지않아 조금전 우리가 올라왔던
길도 넓힐거라니, 어쩌면 내가 이사가기 위해 올랐던 그
작은 소롯길도 이젠 정말 못올라보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세상은 봄이 왔다고, 다투어 새잎들이 수런수런 일어서고
있었다. 떡갈나무잎은 벌써 다자랐다. 곧 연둣빛이 진한 녹색으로
물들어가고 머잖아 자신의 나뭇잎색을 닮은 도토리를 만들어
놓겠지.
원래 하나였던 산을 반토막을 내서 길을 낸 터라 우리는
한쪽산을 한바퀴 돌고 길을 건너야 했다. 사람도 불편한 그길
때문에 산에 사는 것들의 길을 끊여 놓아, 그것들의 생태계는
얼마나 큰 변화가 있었을까 싶었고, 인간인 나는 잠시
그것들에 진정으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산을 내려 잠시 산책로를 따라 가니 갖가지 분홍색으로 무리지어
피어있는 철쭉꽃이 우릴 반겨주었다.
이젠 하얗던 사월의 봄꽃들이 거의 다 져버린 자리를
보라색과 분홍색을 띤 꽃들이 화사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라일락이 그렇고, 철쭉꽃이 그러한 것처럼..
그림을 그리려고 스케치북을 펼쳐든 아이들과,
원고지 첫장을 펴고 제목을 생각하는 듯 한 아이들 한무리가
어느새 산정상까지 따라왔나 보다.
마침, 불어오는 바람결에 어제 내린비로 한결 진한 흙냄새가
코를 자극해 왔다.
잠시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어서 유난히 공기가 청정하게
느껴지던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이 즐거웠다.
일부러 숲을 에돌아 내려오는길, 여기저기서 만나지는
이름모를 새들의 노랫소리가 유난히 맑고 드높아
내기분도 덩달아 날아오르는것만 같다.
'아, 부디 거기서 많은 푸른것들 품고 굿굿하게
자연을 지켜주려므나' 오늘따라 난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유월엔 내가.(이해인)
숲속에 나무들이
일제히 낯을 씻고
환호하는 유월
6월엔 내가
빨갛게 목타는
장미가 되고
끝없는 산향기에
흠뻑 취하는
뻐꾸기가 된다.
생명을 향해
하얗게 쏟아 버린
아카시아 꽃타래
6월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
산기슭에 엎드려
찬비 맞아도 좋은
바위가 된다